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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 설까?
지나 가버린 날들이 문득 생각나곤 한다.
가을은 회상과 추억의 계절.
지난 날들의 기억이 더욱 그립다.
논산 훈련소 29연대 1중대 3소대
내무반장 방 현균 병장.
뭐 랄까?
첫 입소한 군대에서 바라본 군인의 모습
멋져 보였다.
줄 지어 다려진 군복과 병장 계급장
그리고 남자다운 얼굴이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긴,
금방 들어간 졸병이 병장이라면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지.
방 병장은,
그런데로 치사하지 않고 남자답게 대해
주었다.
학과훈련시엔 늘 앞장서서 구령을 붙여 주었고
다른 내무반장 들 보담 멋져 보인건 왜 일까..
<나도 저렇게 군인이 되면 멋져 보인 군인
이 될수 있을까...>
군인이면 누구가 그렇듯
낮근무보담도 내무반 생활이 더 힘들고
기압과 온갖 고통도 밤에 이뤄지는것
그런탓에 내무반장을 인간성 좋은 사람을
만난건 어쩜 행운였는지 모른다.
기압도 화끈하게 주고 자유도 화끈하게 주던
그 방 병장.
제대 얼마남지 않은 병장의 눈에 훈병으로
들어온 우리가 얼마나 가엾어 보였을까?
물론,
그 시절에도 훈병들이 고향에서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거출해서 주긴 줬다
그게 불문율 처럼 이행되던 시기라서....
좀 편히 지내보자고 그런것.
소원수리 제도가 있긴 했지만 그게 그 당시론
유명무실한 제도가 아닐까..
-백제에 옛 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관창의 어린혼이 지하에 혼연하니...
논산 훈련소가가 왜 이렇게 오랜세월이 지난
뒤에도 기억에 생생할까..
학과 출장시엔 늘 불렀던 군가라서 일까..
행군가로 지금 들어도 너무도 좋은거 같다
훈련소장은 박 남표 소장였지.
지금 그 훈련소장은 생존해 계실까.
그리고 우리의 내무반장 방 현균 님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취침점호가 끝나고 내무반장은 자기의 책상
앞에서 뭔가 쓰고 있었고 늘 그 곁에는
빵과 음료수 <후레바>가 놓여있었다
너무도 먹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수중에 갖고온 돈도 떨어져 사먹을수 있는
여건도 아니어서지.
-왜 그렇게도 그 후레바가 먹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박카스 정도의 크기에
훈련병들이 늘 먹었던 것인거 같다.
논산이란 지역에서만 있었던 것일까?
후엔 보지 못했으니......
훈병중엔,
김 용덕이와 이 한오가 가장 친한 친구였다.
용덕인 논산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었고,
이 한오는 서울인거 같다.
늘 셋이서 푸념도 나누고 대화도 즐겨했었던
우리들 였지만 훈련이 끝나고선 자대배치후엔
연락할 방법이 없었지.
3년간 고생할 생각으로 모두들 불안과 초조해
하던 그 시절.
현대식 건물의 내무반도 우리 29연대가 첫 입주
했었고 식기도 평식기로 교체한건 우리가 첨
였단 애기.
물론 첨엔,
밥도 항고로 날라다 먹었고...
딱 40년전 애긴데 왜 지금껏 뇌리에 생생할까
남자셋이 모이면 군대애기고 그 애긴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단 애기도 있지만.......
남자들의 별스런 세계가 군대고 보니
화제가 되는건 당연한 일인데.........
대한 남아로 태어나 군대애기를 당당하게
애기 할수 있다는것도 장한 일임에 틀림
없다.
눈을 감으면 손에 닿을듯 가까곳에 있는
논산 훈련소.
진정한 대한의 남아로 태어나게 한곳이
바로 논산훈련소 아니던가..
_논산쪽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는다
던 말들.
그 만큼이나 혹독한 훈련을 받았단 애기지
그래도 그런 추억을 할수 있다는건 행복한
일이지 않은가
그런 추억조차 없는 사람에 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