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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4 일째

가수 이 미자

-국민의 가수 이 미자.

가요무대를 자주 본다.

그 시절의 가요를 들음으로 그 시대의 상을 느낄수 있고 그 추억을 유추할수

있어서 인거 같다.

그 시절의 노래엔 그 시절만이 느낄수 있는 풍경이 담아있거든..

-가거라 삼팔선.

그건 해방후에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입맛대로

북위 38 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그어진 넘을수 없는 선.

-아 산이 막혀 못오나요, 물이 막혀 못오나요?

이런 애절한 가사도 그렇고 남북으로 갈라진 부모형제가 만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부른 노래가 아니던가??

 

가요 80 년, 노래 인생 48 년의 이 미자씨.

처음 그의 프로필을 본건 라디오도 티비도 없던 궁벽한 시골이라

< 농원 >에 실린 간단한 그의 프로필였다.

60 년대 초반.

동백아가씨란 노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미자.

그게 금지곡이 되어 한 때는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지만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노래 아니었던가?

 

백 설희, 박 난아, 신 카나리아 등등

소위 미성인 목소리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시절.

그의 노래엔 미성이라기 보다는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목소리가

여태껏 미성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선건 아니었을까?

 

노래 인생 48 년.

거의 반 세기 동안이나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중가수

< 국민의 가수 >니 < 엘레지의 여왕 >이란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만큼 한길만을 걸었고 한결같이 정성을 다한 그 분의 노래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을까?

한 동안 인기를 끌다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요즘의 인기가수들.

이 미자씨의 모범 사레는 타산지석으로 삼을만 하지 않은가?

 

-애절하면서도 고음의 영역을 잘도 넘기는 음성은 천성적으로 가수이기 때문였을가

아님 노력의 결과일까?

 

60년대 한국 가요계를 주름 잡았던 화려한 전력.

아마도 60년대가 한국 가요와 영화의 전성기는 아니었을까?

내가 감수성이 넘치던 시대가 60 년대라서 일까?

배 고픈 시절에서 모든게 나아지던 시대.

성장을 위한 기지개를 켜던 시대라서 그런걸까...

 

66년도 <신앙촌>에 갔을때 <준>은 늘 이미자의 노래를 불렀고 라디오에선

쉴세없이 노래가 흘러나왔던 기억이 난다.

-황포돗대, 섬마을 선생님,흑산도 아가씨,당신이라 부르리까...등등..

애절하면서도 마음을 달래주던 그 노래들.

나온 노래마다 힛트 아닌것이 없었고 , 귀에 익지 않은 노래가 없을 정도였으니

요즘의 어느 가수가 그 정도일까?

없을거 같다.그런 저력을 보인 가수가.......

 

70을 바라보는 연세지만 아직도 무대에 서면 하나도 변함없은 음성으로

그 시절을 회억하게 만드는 이 미자.

한눈 팔지 않고 노래로써 승부를 건 열정이 오늘의 이미자를 만든건 아닐지...

그 오랜 세월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은 가수는 일찌기 없었다.

< 국민의 가수 >란 칭호를 붙인건 절대로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들 곁에서 아프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추억을 생각케 해주는

이 미자씨..

오랫동안 건강한 몸으로 들려줬음 좋겠다

우리의 자랑이기도 하고 가요사의 크나큰 획을 긋는 그분이니까...

우리시대 뿐 아니라 후세에도 결코 잊혀지지 않은 휼륭한 가수란 것을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거다.

후배들이 본 받아야할 삶의 지침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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