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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1 일째

종로


  
종로에서 만났다.
<시 교우회 모임>
해장국 골목으로 유명한 그곳.
다닥 다닥 붙은 한옥집들이 정답게 느껴지는 그런 집들.
비 좁고 불편하게 보여도 그 안에 들어서면 전혀 그렇지
않다.

< 한우 명가 >
늘 골목이 그 골목 같아서 늘 헤맨다.

허지만, 여기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 한옥을 다 밀어
버리고 재 개발한단다.
그럼 또 다시 삭막하고 개성없는 여늬 도시와 다를바 없는
그런 고층 건물이 들어설거고 종각을 지나서 가면 예전에
여기가 오손도손 한옥이 어우러져 있던 그런 한옥 마을이구나
하고 유추나하겠지....
정다운 모습의 옛것이 사라진단 것도 허전함이다.

서울에 와서 연호형님집서 나와서 독립했을때..
이런 한옥이 다닥 다닥 붙은 곳에서 살았다
서대문구 옥천동 126 번지24호
내 주민등록표엔 그렇게 적혀있다.
직장이 가까운 탓에 비교적 방값이 싸단 것에
그랬는지 모른다.
하긴,
그 당시의 서울의 집들은 거의가 그런 모습.
아담한 이층 양옥이거나...
ㄷ 자형의 한옥.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낯선 모습으로 서 있을 뿐...

옥천동에 살땐,
천정에서 빗물이 들어차도 그걸 수리하여 달란 말 조차
하지 못했었다.
당시는 방도 귀하고, 또 맘에 맞는 빈방을 구 한단 것도
쉬운게 아니라서 집 주인의 권세는 대단했었지..
-세든 주제에....
세 사는게 무슨 죈가?
이렇게 거리낑없이 말하곤 했다.
세든 사람은 명절이건 생일이면 주인에게 선물을 갖다 주는 것이
일반화된 도덕률였던거 같다.
미움을 받아선 안되거든....
그 만큼이나 사람사는 모습의 서울풍경..

여기서 모인 이유도 우린 이런 옛스런 것이 좋았는데...
사라진다니 아쉽다.
하긴,
이런 금싸라기 땅을 비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않겠지..
전통한옥이 사라진단 것이 아쉽긴 하지만....

-장안동에서 공인 중개업을 하는 권씨가 오지 않았고..
마포구의 현직 동장으로 있는 최씨도 불참.
얼마전에,
아현동에 독서실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그 출발을 축하해 줬다.
창업이든 개업을 하면 우린 박수를 치면서 금일봉을 주는 것이
회칙으로 정해져 있다.

-현저동 102 번지의 애기.
-30 대 초반에 왕성한 활동을 했던 직장 동료들..
-누군가 악질이란 평을 하면 이구 동성으로 맞다
사람의 눈은 비슷한가 보다.
-그 ㅎ자란자..
자긴 뒷 구멍으로 봉투를 받음서도 부정하지 말라.
참 간교한 자거든..
좋은 사람의 애기 보담 우린 악인을 성토하길 좋아한다.
그 만큼 좋은 사람 보담 악인이 더 많았을까?

2 명을 제하곤 모두가 재야인.
나름대로 직장을 다닌 사람도 있어 재야는 아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라..
-연금은 절대로 일시불로 타지 마라..
선배의 충고가 마음에 와 닿는다.
다 경험에서 비롯된거니까...

종로는 역시 사람이 붐빈다.
빈터만 있다하면 많은 인파가 붐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연인들이지만....
그렇지,
그 주역들은 젊은 세대며 연인들이지..
발랄한 모습과 깔깔대는 모습에서 젊음을 느낀다.
-나도 저런 시절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랫었지, 나도 저렇게 이 거리를 쏘다니곤 했었지..
이들처럼 공지가 아닌 공원이거나 비원과 음악 다방과
극장....
그런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종로며 을지로를 해맨건 사실
였다.
그 사이에 끼어야만 이 시대의 젊은이란 관념였을까..

<한우 명과>를 나온 우리들..
딱히 갈데가 없다
이런 젊은 세대처럼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으면 추하게 보이고
거리를 해매단것도 볼썽 사나운 것.
어쩔수 없이 호프 집으로 갔다
호프 보담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
3 개월에 만나는데 무슨 대화가 그리도 많은지..
다 지나간 추억이지만.....

별로 덥지도 않고 걷기 좋다.
오늘 따라 5 호선은 비어있었다.
10시가 넘어설까?
기분좋은 만남.
오늘 결강한것을 생각지 잊기로 했다.
정다운 사람들 만남에 깊은 의미를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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