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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앞에 눈을 감고 그린다.
머언 고향의 모습을.......
쫙 깔린 아스팔트길 따라 달리는 길.
이런 2 차선 길도 몇년되지 않는다.
< 동신대학교 >때문이다.
온통 자그마한 야산을 통채로 동신대학교
캠퍼스로 만들어 버린 거대한 프로잭트.
누가 상상했겠는가?
통학생들을 배려한 모습의 캠퍼스.
광주에서, 목포에서 진입하기 쉬운 목 좋은 곳.
밤남중 삼거리다.
작은 함석집들이 번듯한 양옥으로 바뀌고...
주변의 술집과 원룸이 번성한것도 학교와 무관치않다.
학교 주변에 왜 술집이 잘 된건가?
거침없이 달리면 딱 5분.
우리집에 당도한다.
쭉 펴진 아스팔트에서 좌회전하면 좁은 시멘트 길.
비만오면 튀기던 흙탕물때문에 차 갖고 가면 신경질
나던 그 길..
-이놈의 동넨, 언제나 반듯한 진입로 만드나??
시멘트도로가 된지 몇년도 되지 않는다.
-왼쪽의 깔그막의 일단의 소나무 숲..
아버지가 여기서 도깨비에 홀렸단 소문은
다니기가 무섭던 곳..
곳곳에 공동묘지 몇기..
-왜 어렸을땐,묘지가 그렇게 무섭던고??
조금가면 들 가운데 작은 섬.
수평선 처럼 고른 들녁에 봉긋이 솟은 작은 동산.
<황구덤이>라 불렀다.
옛날에 위로 부터 떠내려와서 생겼다고도 하고...
나즈막한 야산을 논으로 만듬서 여긴 돌이 많아 산으로
남겨뒀단 설도 있는 이곳..
황구덤이도 무섭다.
어렷을때, 일숙이가 죽었을때 자기엄마가 그 어린애를
황구덤이에 항아리채 묻었단 소문을 들었었다.
그래도 농부들은 새참을 이 섬에서 먹었다.
작은 그늘이 있기 때문...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상당히 너른 광장과 마을 회관자리.
아직도 마을 회관을 건립하지 못하고 창고로만 쓰는
시멘트 벽돌 건물.
광장은 동네 사람들이 나락이든 고추든 너는 장소다.
바로 그 회관뒤가 우리 집.
차는 흔히 이 회관광장에 세운다.
앞을 흐르는 작은개천.
농수로 관으로 흐르는 물 줄기.
지금은 오염되어 흙탕물 빛으로 변했지만,어렷을땐 어찌나
맑았던가?
고기가 살았으니......
외할머니댁의 큰 감나무.
마침 외할머니의 상징 같은 이 감나무..
이젠, 감 나무도 늙었나 보다.
중간 중간을 잘랐다.
유난히 크고 굵은 이 감.
하얀 한복을 입은 외할머니가 나오실거 같다.
아버지가 지은 스레트 집.
낡고 초라한 집이지만,아직은 그대로다.
곳곳에 띄는 부모님의 손때 묻은 물건들.
-낫과 삽도 그렇고....
쇠스랑이 그렇고, 낡은 소쿠리가 그렇다.
아버지 손으로 만드신 방안의 선반과 그릇들.
<왜 그런 것들이 그렇게 아프기만 할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의 무덤.
한켠에 있는 연고없는 큰 아버지 무덤.
아버지의 비석을 세울때 어머니는 돌아가신
날짜를 빈 공간으로 남겨뒀다.
아직도 살아계신 어머니......
-넌,임마 이게 뭐냐?
왜 여기서 누어 있는거야, 부모님 뵙기에 부끄럽지 않아?
말 없는 동생무덤앞에 이런 질책을 하곤 했다.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길.
여기 저기 야산에 잔설이 그대로 차겁게 보인다.
-저 동산은 내가 밟이 닳도록 오르락 거렸던 야산.
화섭이와 눈물나는 추억을 만들던 그곳...
그대로 산인데 나무만 조금 큰거같다.
누군가 농약 병들을 이곳에 버렸을꼬??
산이 죽어가게 시리.....
내 뛰놀던 저수지.
그곳에 다다르자 고요가 스민다.
얼음판 위에서 팽이치던 애들, 연 날리던 애들..
떠들고 싸우고 울고 노래 부르던 애들..
다 어디로 갔을까?
키가 넘은 갈대만이 무심히 맞는다.
저수지 둑 군데 군데 그대로 둔 낙시밥들 뿐..
오른쪽 산 밑..
송진양반이 살던 집터는 사라지고 누군가 마늘을 심었다.
작년 여름에 간 경화로 저 세상 뜬 친구 정오.
그 무덤이 보인다.
가서 인사나 하고 가자.
세상을 세상답게 살지 못하고 떠난 친구..
허무만이 맴돈다.
어떻게 잊혀질까?
오랜 세월이 흘렀다해도 어찌 잊을까?
고향은, 영원히 지울수 없는 마음의 본향.
눈을 감고서 잠시 고향엘 갔었다.
서러운 눈물만 나오는 고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