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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9 일째

오랜 인연


  

사람은,
숱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인생이 열리기도
하고, 잘 못 맺어진 인연으로 패가 망신한 경우도
있다.

지나온 세월들.
내 곁을 스쳐간 숱한 모습의 사람들.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내 기억에 새겨져있을까?
아니,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져 있을까?

연호형님과의 인연 맺은지 꼭 30 년인가 보다.
강산이 세번을 바뀌었으니, 참 오랜 인연이지.

딱 30 년전,
청운의 꿈을 안고, 달랑 개나리 봇짐메고 서울 온게
1974 년 5 월였다.
그 전에도 간간히 서울에 와서 있다갔지만, 새로운 각오로
서울에 책임을 지고 정착한단 생각은 솔직히 두려움과 불안
이 절반씩 교차했었다.
-과연 이렇게 처절한 삶의 투쟁장에서 견딜수 있을까?

-저 형님,
제가 방을 구할 동안만 형님께 신세 좀 지겠습니다.
당분간만....
-그렇다면 좋을데로 하게나...
그랬었다.
서울 와서 첫 대면에서 다짜 고짜 함께 살 생각였다.
그 만큼이나 사정이 화급했던가 보다.

전화아닌, 편지로 내 마음을 전했었고....
서울 전출도 순전히 연호형님의 배려였지만....
그걸 기화로 눌러있을 작정을 했으니 뻔뻔도 이 정도면
서울사람 뺨칠정도의 뻔뻔함 이었을거다.

첫 대면에서 함께 살겠단 것도 그렇지만...
어떤 상의 한마디 않고 날 델고 가는 형님의 뱃장도
대단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쉽사리 허락할수 있었을까?

연호형님에 이어 첫 대면한 형수.
어쩜 부부가 이렇게 닮았을까..
아니, 연호 형님보담도 더 자상하고 더 친절했다.
처음 봤음서도 어쩜 이렇게 교감이 통했을꼬...??

산꼭대기 시민 아파트..
금화 시민 아파트 102 동 504 호.
실평수 11평에 방 달랑 2 개, 식구 4 명.
부부침실, 또 다른 한칸에서 애들과 셋이서 기거했다.
<단 몇일간만 있을거다>
그게 인연이 되어 그곳에 눌러살게 되었다.
그게 몇년인가?
철거할때 까지 있었으니 한 3 년??
가물 가물하여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제 시동생예요..
늘 아는 사람을 만나면 형수는 그렇게 소갤했다.
그게 자랑스럽게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하나있는 시동생이 망나니 노릇을 해서 그런건지도
모르지...

한 집에서 3 년을 친형제같이 지낸 사이라..
어떻게 잊을수 있겠는가?
함께 살면서 한번도 얼굴 붉히고 살았던 기억이 나질않는다.
그건 형수가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으로 보였으니.....
<나도 결혼할땐, 이 형수같은 여자랑 결혼해야 겠다>
내 이상형였다.
자상하고, 다정하고, 인정 많고, 이해심 많고 배려하고...
음식솜씨 끝내주고...등등....

선물 보따리 2 개를 들고 끙끙댐서 갔다.
형님은 친목회 가셨단다.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때 민이가 초등학교 4 학년때..
민이 아들이 마침 4 학년이란다.
-너, 아빠에게 물어봐..
아빠가 내 정도 되었을때, 함께 살았던 아저씨가 오셨다고?
알았지, 그럼 알거야..
-네, 물어 볼께요.

청운의 꿈을 서울에 펼치고자 개니라 봇짐지고 왔던 나.
이젠, 서서히 떠날 시간이 가까워 지니.....
무심한 세월이여....
날렵하고, 청조하던 그 형수도 이젠 세월앞에 어쩔수 없나
보다.
히끗 히끗한 회색의 머리칼이 왠지 서글픔을 자아낸다.
-형순, 지금 어떻게 되었죠?
-부끄럽게 왜 나이를 물어요?
6학년 3 반이요.ㅎㅎㅎ...
세월 빠르죠?

우린 식사 끝나고 차 한잔 앞에 두고 대화는 30 년을 뛰어
너머 그 시절로 돌아갔다.
-원심이는 잘 사나요?
-왜요, 혼자서 살고 있죠. 바보 같이...
-나 한테 시집왔음 땡 잡았을 텐데..??
-누가 아니래요, 온 복을 지가 찾지뭐..
한참 애길 나누다 나와보니 함박눈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
로 내리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허지만, 귀성객들의 안전운전이 더 큰 문제다.
빙판으로 된 길을 거북이 처럼 달릴걸 생각하니...
집을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실감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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