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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일째
아버지에 대한 회상
내겐 아버지의 존재는,가까운 곳에서 정 겨운 대화를 했던 분은 아니었다.늘 근엄하고, 접근하기 어렵고,조심 스러운 분.한 마디 말을 해도 생각을 해야 했고,편하게 다가서는 그런 분은 아니었다.옆에 사시는 이모부님의 그 다정한 눈빛.늘 친구처럼 대해 주시던 이모부님이 부러웠다.- 인간의 도리를 저 버리는 짓.-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짓.- 당당하지 못하는 짓.- 밥을 굶어도 굶은 체를 해서는 안되는 그런 체통을 퍽도 중히 여기신 선비기질인 분였다.한문학을 잘 하셨던 조부님.막내 아들이라 학교라도 보내 드렸더라면 아버진어떤 출세를 했을것만 같았다.당신은,농사짓는 농부보담은 정신적인 업무를 담당해야 했던 분같았다.- 늘 책을 가까이 두고 보신분.- 깨알같이 적혀 있는 한문책을 들여다 보시던 분..- 창호지에 세로로 쓰시던 실력.난 의미를 몰랐지만,아버지가 참 존경스럽고 , 대단한 분으로 보였다.구 한말에 사셨던 조부님.그때의 사회의 분위기가 학교 다닐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지만.....조부님은,공부 보담은,종교에 심취해 있었던 분.시천교( 侍天敎 )의 감투를 쓰셨던 분였다.종교의 자유가 없던 시대라금지된 종교를 믿었던 조부님.그 와중에서, 막내로 태어났지만,아버진, 부모의 배려를 받지 못하고 사셨던거 같았다.그런 가난이 싫어 무작정 일본으로 갔더랜다.당신이, 일본에서 살아갈수 있는 어떤 비장의 무기도 없이..그 일본 생활의 세월.얼마나 고달프고 힘이 들었을까...차라리 해방되어 귀국하지 말고 거기에 그냥 살걸?하시던 당신.조국의 곤궁한 현실이 일본보담도 더 못한 것이었나 보다.어수선한 해방 정국과 불안한 정치..춘궁기를 견디기 힘든 가난..그리고, 민족 상잔의 전쟁....그 뼈마디에 스며든 혹독한 가난한 시련을견딘단 것이 죽음보다도 더 힘든 고통였으리라...그런 힘든 삶에서도 당신은 한번도 우리들 앞에서비굴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근엄하고, 당당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배가 고프고 쪼르륵 소리가 나도 당신은, 배 고픈 표정을 내지 않았다.여유있게 , 호기있게 그렇게 거닐었다.그런 체면이 당신은 바로 생명과 같았나 보다.그런 날들 속에서 힘든 건 어머니...마땅한 농토도, 밥 벌이도 못하신 무능한 아버지..그걸 헤쳐 나가야 하는 어머니.얼마나 힘들었을가?허지만,어머닌 한번도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었다.아버진,늘 위에 계시고, 집안의 절대적인 존재였다.아버진,늘 말씀이 없으시고 , 근엄하시고 해서 말씀으로 하시기 보담은행동으로 보여 주셨다.그런 행동은, 우리가 본을 받아서 산 교훈으로 만들고.......우리에게,재산을 몰려 주신건 없어도 당신은.....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성을 심어 주셨다.- 비굴하지 않고 늘 당당하게 한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것.그건 당신의 생활 철학이자 우리들에게 전수하신 귀중한 유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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