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3 일째
잊혀지지 않는 너(2)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걸가?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뇌리에 새겨 있는 그와의 우정.생생하게 기억된다.그 친군,성동고등학교에 다님서도 나에게 변함없는 우정을 과시하곤 했다.서울의 경치와 습관, 학교 생활 등등....완전 촌에서 머물고 있는 나에게 그는 많은 것을 알려줬다.- 나만, 이렇게 서울서 학교 다니니 미안하구나..그는 학교를 서울서 다닌단 사실 조차도 미안해 했다.1 주일에 한번 정도의 편지.첨엔 그랬다.난, 그의 편지를 받고서 답장 쓰고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빨간 우체부의 자전거만 바라봐도 즐거웠던 시절.시골의 척박한 학교를 다님서도 난 늘 서울로의 탈출을 꿈 꾸었다.그런 꿈을 이뤄줄수 있는건 매형였지만,그 매형도 생활에 기반을 완전 잡지 못한 실정이라 내 뜻을 그렇게쉽게 들어줄 입장도 아니었다.그는,무사히 성동 고등학교 졸업하곤 한양 공대로 진학하고.......난, 그의 진학을 축하해 주는 입장으로 멀리서 박수를 쳐 주어야했었다.난, 대망의 꿈(?)을 안고 신앙촌으로 왔고,그는 한양대 2 년을 중퇴하곤 군대 갔었던가 보다.우리의 우정은 지속이 되었고..................군대서 그의 편지의 두절.두절이 된 이유를 모르고 지냈었다.아마도 힘든 군대 생활에서 편지쓴단 것 조차 사치였던 심정이라그랬을가?그리고, 우리의 우정은 중단되었고, 침묵만이 흘렀다.그 기간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내가 군대하고 , 나서 교도관의 신분으로 교육중일때 그가 왔다.교육생의 위치.그 교육을 마치고 발령을 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았었다.서대문구 현저동 < 국립 교도관 학교 > 면회실.우린 잠간 밖으로 나가서 만났었지.- 수척하고, 초라해 보였다.군대 제대하고 나선 형님의 가세가 기울어 학업도 중단하고 공직자 시험을 준비한다던 그.......- 그래,네가 발령 받고 나서 우리 서로 연락하자.이 편지로 편지해.함서 적어 준 그 주소.바로 자기의 형님 주소였다.성동구 행당동.그러니깐 1972 년 9 월 26 일 발령이후..............그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그 주소는 편지가 반송되어오는 주소였다.그 친구가 보고 싶다.마음이 넉넉한 우리들.서로가 힘이 되어 주고 든든한 위로를 해 주던 우리들.iloveschool 이나, damoim 등등......동창 모임에 가서 글을 남겼고, 아는 친구들 만나서 물어도 모른단다.우정이 변한 걸가?아님,그가 내 앞에 나서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걸가?자신의 위치가 초라해서 내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한 걸가?숱한 세월이 우리사이를 흘렀지만,우정의 색갈이 옅어 질수 있는가?그 친구가 보고 싶다.내게 형과 같은 그런 친근감을 주던 그 친구 신 천식.꼭 만나 못한 시간을 애기하고, 영산강변에서 서로가 격려를 해 주던그 우정의 대화를 회상하고 웃으리라.앙천대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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