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radio
트란 지스터 라디오.작고 네모난 트란지스터 라디오가 갖고 싶었다.온 동네가 모두들 방송국에서 송출한 전파를 중계 하는 방식으로 큰 스피커로 들었을 뿐.....이런 보기 좋고 작은 트란지스터 갖고 있는 집은 몇 집 없었다.그때,트란지스터 가격이 지금의 소형차 값 정도나 되었을가?트란지스터 산단 것은 언감 생심 어찌 꿈인들 꾸겠는가?바로 뒷집에 이사온 서씨.그 분은,미군 부대에서 일했다가 낙향하여 농사짓고 있었지만,그곳 부대서 생긴 작고 까만 트란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마치 보물 1 호 처럼 번쩍 번쩍 닦아서 애지중지한 물건였지..만져 보고 싶어도 만질수 없이 바로 자기 머리 맡에 두고 들었다.난,가서 들을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지 덕지할 판이었지..1960 년대 초...- 이 광재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인기 프로 위문 열차.- 유산 없는 자손들, 하 숙생..잡음 많고 잘 들리지 않은 스피커를 듣지 않고 뒷집에 갔다.대청에서 다소곳히 앉아 들었다.마땅히 친구 라도 있었음 좋겠는데 나 보담 한참 아래인 아들과 딸.달랑 두 명 뿐이니, 놀러간단 것이 좀은 계면쩍기도 하고 그랬다...그러나,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연속극.이 창환, 고 은정 콤비가 나오는 연속극을 듣고 싶었다.집에서 잉잉 울리는 스피커 소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청음을 외면할수없었다.별로 달갑잖게 받아 들였지만, 그런 눈치 살필 여가가 없었다.- 그만듣고 낼 놀러 올래?인제 잠을 자야지....그런 말이 나올때 까지 라디오에 매료되어 일어설줄 몰랐다.나중에 돈 벌면 이런 ㅡ트란지스터 라디오 하나 꼭 사야지..볼만한 것도 들을만한 것도 없는 시골에서 라디오는 대단한 것이었다.어떤 언론 매체도 없었다.신문이야 있었겠지만, 그건 먹고 살기 편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지, 어찌 시골서 신문을 구독할수 있었겠는가?먹고 살아가는 것이 당면 문제인걸..신문 같은건 사치였을거다.그때 , 그래도 농사많이 짓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왜 그런 문화적인 것엔 관심 조차 없었을가?< 하동 양반 > 같은 분은,한 여름에도 쌀밥을 먹고 살았다고 하던데, 그런 것엔 도통 관심 조차 없었을가?밥만이라도 굶지 않고 사는 것만도 복에 겨운것이란 생각였을가?밥 굶지 않고 산 것일뿐 진정한 부자는 아니었나 보다.그 라디오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남아서 그런걸까?해외여행중엔,촌 스럽게도 제일 먼저 < sony 카세트 >를 샀다.사놓고선 듣지도 않는 것을..........라디오 ----------가슴 뛰게 하는 나만의 아픈 추억이 깃든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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