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7 일째

가죽 나무

* 도종환 *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하늘 한 가운데를 두팔로 헤치며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댓글 작성

일기장 리스트

12 1991 사랑과 고독, 그리고... 6990 독백 98

히스토리

키쉬닷컴 일기장
일기장 메인 커뮤니티 메인 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