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7 日目
감자 익는 냄새
* 안 도현 * 용택이형네 식구하고 우리 식구하고감자를 먹으려고젓가락을 하나씩 손에 들고 둥그렇게 둘러앉아뜨끈뜨끈한 김이 나는 감자를 한 양푼 앞에 놓고 보니문득 감자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것이었다.감자는 먼저,땅속에서 어떻게든 싹을 틔우려고 무진장 애를 썼을 것인데그중에 성질이 급한 놈은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어떤 놈은 통통 튀기도 하면서이놈의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겠지그러다가 어느 날 제 몸 바깥으로 솜털 같은 것이 빼죽이 나왔을 테고깜짝 놀랐겠지, 무슨 큰 병이나 난 게 아닐까 하고그것이 제가 틔운 싹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고 그때부터는뭐랄까, 혁명에 대한 예감이랄까죽자 사자 싹을 위로 치켜올렸겠지아픈 줄도 모르고 땅 거죽을 머리로 들이받았을 거야연초록 잎사귀를 땅 위로 펼칠 때까지 말이야감자는 땅속 줄기가 몸이므로내 상상력은 여기서연초록 잎사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감자도 귀해 실컷 못 먹던 시절이 있었다고용택이형은 아, 참 맛나네, 맛나네 하면서 먹고형수는 열무김치를 척 얹어서 먹어도 맛있는데, 하고민세와 민석이는 찍어 먹을 설탕이 모자란다고마치 감자를 한 입 입에 넣은 것처럼 볼따구니가 퉁퉁 부어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고뜬금없이 민해는 고구마가 먹고 싶다, 하고아내가 설탕 가지러 주방 쪽으로 가는 사이에나는 또 감자의 성장기를 상상해보는 것이었다그래, 연초록 잎사귀를 땅 위로 밀어올린 뒤부터가 문제야땅속에서는 실뿌리가 수없이 뻗어나와 흙을 움켜잡기 시작했을 것이고그 윗줄기에 처음에는 유경이 젖꼭지처럼 조그마한 물집 같은 게 생겼겠지불에 덴 뒤에 부풀어오르는 것물집,물집이라는 말은 말은 아프다흉터가 앉을 자리이기 때문이지세상의 허벅지에 누군가 火印을 찍은 자국들,감자알들,제각기 하나의 둥글둥글한 세계,언젠가 썩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감자는 점점 몸이 부풀어갔을 거야날이갈수록 주렁주렁 매달리는 기쁨과 슬픔을반반씩 키우며 속이 꽉 찬 감자가 되어갈 때감자꽃은 하얗게 피었을 테고어라, 감자꽃이 피었네,하며 나는 그곳을 지나쳤겠지도현이 너는 감자도 안 먹고 무슨 생각 하냐 또 시 쓰냐용택이 형이 던지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나는 감자에 대해 시를 한 편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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