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즐거운 사라
즐거운 사라 >란 소설이 한때 센세이널하게 인기를 끈적이 있었다. 그 내용도 보지 않고도 언론에서 어떻다 하면 덩달아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것이 사실....... - 그 내용이 너무도 야해서 청 소년에 위해를 줄 우려가 있단애기고, 문학계선 건전한 창작욕구를 저해할수 있단 것으로 반대를 하였지만... 결국 판금으로 일단락되어 서점에서 놓인 책들도 수거한단 보도.. 하두 방송에서 떠들어 서점으로 불이나게 달려 갔다. - 즐거운 사라 주세요. - 다 떨어 졌어요.. - 살순 없나요? - 나오지 않아요... 너도 나도 그 책만 찾네요.하두 방송을 해서 그러나? 내용이 별것도 아니던만... 주인도 보았던 모양이다. 감추고 하면 보고 싶고 꺼내보고 싶은것은 본능 같은것... 아쉬웠지만, 돌아올수 밖에 없었다. - 그 화재가 된 책 보았어요? - 뭔데? - 마광수가 지은 즐거운 사라 말이요. - 아니..못 봤는데, 보고 싶은데? - 여기 있어요. 전날 하두 요란히 떠들길래 아는 서점에서 살짝 샀어요. 내가 빌려줄테니깐 한번 봐요.. 보니 별거도 아니더군요.. 같은 사무실의 P가 책상서랍에서 귀중한 책처럼 꺼내준다. 집에 가져가지도 않고 궁금해서 봤지만, 소문과는 다르게 어떤 변태적인 것이나, 상상이상으로 표현한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그 마광수 교수의 특이하고 약간은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간혹이눈에 띠긴 했지만...... 전에 < 광마일기 > < 권태 >를 읽었던 터라 뭐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어쩜 위의 두 책이 더 난잡하고 소설이라고 애기 하기가 좀 그런 내용이 들어있었지... 즐거운 사라는 외려 더 나은 감이 들었다... 소설, 인간의 삶에서 일어날수 있는 세계, 가능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 내용은 상식선의 범주를 벗어날수 없는 것이 아닐가? 허지만, 위의 책에선 어쩜 구역질 나는 내용들이 간간히 그려지곤 한다... 읽고 나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느껴야 하고... 맘으로 전해지는 어떤 떨림이 있어야 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포르노 비디오 한편을 읽었던 기억만이 남았다... - 좋아하는 여인이라고 하지만....... 그 여자의 화장실에서 어떻게 그 더러운 부문까지도 좋아하고 즐겁게 애무를 한단 것인지..........?? 파격이 아니라 변태가 아니라 비 상식을 상식인양 그린 작가의 양식이 문제였다.. 과연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멧세지는 뭘가?? - 사랑한다면 더러운 부분까지도 좋아해야 한단 것인가... - 문학작품에서도 얼마든지 포르노의 비디오를 감상할수 있단 애긴지... - 창작의 자유는 그런 금단의 벽을 헐고 다 그려도 좋단 애긴지...... - 지성인이 그리면 아무리 천박한 소재라해도 향기나는 문학작품이란 것이었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창작이란 이름으로 과연 이런 정도의 난잡한 것 까지 다 그려도 작가를 보호할 가치가 있단 것인가? - 이 보다 더한 야한 포르노가 판을 치는 세상에 유독 문학만이 그런 구태에 얽매여 잡아논단 논리는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다... 이렇게 항변할지 모른다. - <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 > 이 당시는 거센 반대로 판금을 당했지만, 지금은 명작이 되어있지 않느냐?? 이런 논리를 앞세울지 모른다. 일응 맞을지도 모른다. 허지만, 누가 봐도 마 광수교수의 그 책은 어디 봐도 감동이나 인간의 깊은 사랑을 그린 구석은 찾아 볼수 없었다..... 읽고 나서도 어디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것이 없었다는 것. 내가 깊이 보지 못한 눈을 가진 것인지 몰라도 암튼 보고 나선 좀은 마음이 찜찜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지금 그 책을 봐도 그런 감정이 들거란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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