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7 일째
우울한 악보(퍼온시 )
(이문재) ------- 온갖 풀들의 뿌리는 그러나 그들의 꽃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으니그래 너도 이런 날 저물 무렵이면은행나무쯤으로 한껏 낙엽이나 만들어버릴 것 모두 버리고그늘이 있던 자리까지도 비워내면서땅에 두 발을 담그고 온전한 줄기로만 남아잠시 서 있을 수 있다면,빛이 있는 나절에는 그림자에게도 얼마쯤의 눈길을 주며바람불어 추운 날에는 어둔 뿌리의 얘기도 밤늦도록 들어주면서그래 너도 은행나무 오래된 것쯤으로이런 세월의 진한 황달을 한 번의 일로 앓아 봤으면,좋을 일, 얼마나 좋을 일인가, 죽일 것들의 이름들,너의 전부에 달라붙은, 달라붙는 죽일 것들의 이름을여름날 잎사귀의 푸름에 새겨 넣으면서,어둔 잎사귀의 그늘도 내려 놓으면서, 천천히 지나와이런 날, 하루 이틀쯤의 품으로 모두 버릴 수 있다면,그래 겨우내 추운 꿈을 꾸면서 다가오는 봄 앞에맨몸으로 나설 수 있다면, 맨몸의 부끄러움만으로 봄을마주볼 수 있다면, 그래언제나 뜨겁기만 해 싫은 사람의 말 대신에 나도너의 근처 멀지 않은 어디쯤 은행나무의 수컷으로 서서넉넉한 바람의 안깃에다 단 한 번의 언어를 집어넣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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