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3 일째
눈 내리는 마을( 퍼온시 )
- 김정란 - 일년 내내 눈 내리는 마을이 있어요 거기선 눈물을 흘릴 수 없지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가슴의 깊고 끈적거리는 물이 희고 가벼운 날개로 바뀌어 버리거든요 그 마을의 하늘엔 늘 해 두 개 달 두 개가 떠 있어요 밤도 낮도 없어요 그리곤 반짝이는 눈이 하루종일 조용히 조용히 내려요 눈은 쌓이지 않아요 한 번 있었던 걸로 족하다는 듯 바닥에 닿으면 아슴하게 사라져요 마을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요 그냥 조용해요 그 마을은 어떤 빛으로 빛나는데요 저절로 빛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어디서 빌려온건데 아무도 어디서 빌려왔는지 몰라요 아마 가슴의 상처 밑에 고여 있던 걸까 그 상처가 이상한 말의 통로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그 통로를 통해서 그 마을 사람들이 천 년 전과 천 년 뒤로 말을 보내고 받는다고들 하거든요 그 말들이 어쩌면 맥락과 맥락 사이에서 빛을 만들어낸 걸까 아주 먼 곳에서 시작된 빛을 받아서? 아 그래요 아직 공식화된 건 아니구요 그 빛은 안에서 밖에서 빛나요 아주 이상한 빛이에요 그건 먹을 수 있어요 먹으면 배가 부르냐구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냥 진실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죠 그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집 안에서 살면서 집 밖에서 산답니다 모두들 너무나 사랑해서 그래요 그 마을 사람들 살을 보셨어요? 만지면 살짝 지워져요 만지는 사람을 받아들이느라고 그래요 그리곤 다시 생겨나요 다시 주기 위해서요 내가 당신 어깨에 머리를 올려놓으면 내 머리에 맞게 당신 어깨가 안쪽으로 물러서요 그리곤 당신 팔이 내 허리를 안으면 내 허리는 툭 잘려요 소리까지 들리는걸요 싸래기 눈 바삭바삭 소리내며 동구 밖에 찾아오는 것처럼 그 마을에 살러 가시지 않을래요? 흰 눈 종일 조용조용 내리고 상처들이 비밀스럽게 편지를 주고받는 곳 당신도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상한 빛을 생산하는 기이한 발전기가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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