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4 일째
세월의 흐름
어제 우리친족의 모임은 결성된지가 벌써 꼭 20 년이 지났다그 만큼이나 오래전에 만든 모임.죽은 동생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모임회칙이니 횟수니 하는 것을 방대하게 만든 것도 동생이고 그걸 그대로 지금껐 한번도 개정하지 않고 답습해 오고 있다.전에,가끔은 회장을 했던 흥래 형님이 회칙에 없는 사항을 집행해서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은 사라졌다.20 년 동안 운영 해 오는동안....사연도 많았고 변화도 많았지.주부님의 碑를 거창하게 세웠다는 것은 자랑이기도 되지만 아버지 생전에 해 드리지 못한 것은 못내 섭섭하다당신이 만족하신 걸 보았으면 좋았을걸...그건 이 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질질끈 흥래 형님의 탓이 크다그래서 그때엔 흥래 형님이 오기 전에 이미 가결을 하고 말았다돌아오는 초 파일에 세운단 조건.....곗돈으로 충당하고 모자란 것은 각출한단 것..- 비란 이런 곗돈으로 세울것이 아니라 각자의 형편에 의해서 걷고 그래도 모자라면 곗돈에서 체우면된다그런 논리의 형님애기..허지만 왜 그런 설명을 해야 하는지?그건 그 분이 비를 세울 명분을 희석 시킬려는 것뿐어떤 의지도 없었다.설명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과연 개인적으로 알아서 내라니?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그리고 원래의 목표가 비를 세운단 것을 두지 않았던가...옥신 각신하고 말들도 많았지만 혼자서 좌지 우지 못한 것이 못내아쉬웠다 보다그 흥래 형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린 밀어 부쳐서 완성했다그 누구의 비보담도 웅장하고 아름답게 건립했다.그 봄비가 천연덕 스럽게 내리던 날에 우린 모두 나가서 비를 맞으며 하루내 일을 했다.끝끝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 형님.그 속좁은 짓.비를 세운것은 지나 나나 돌아가신 조부님이고 주위인에게는 효를 세운것이 아니던가...그 때의 그 사건으로 해서 흥래 형님이 안 나오고 있다.나오든 말든 우린 그대로 잘 운영하고 있고 만나면 지난 애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애기..자녀들의 애기와 늙어 가면서 겪는 애기들...건강에 대한 애기들...삶과 죽음은 무엇인가?광래 형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10여년이 흐른가 보다.그 분이 없는 공간을 그래도 형수가 잘도 채워주고 있다그때 연탄개스로 숨진 딸과 함게 중독되었던 애가 건강히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으니 참 세월이 빠르다.딸을 애지 중지 기르다가 졸지에 죽어 버리자 비탄에 잠겨 술로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니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당신도 세상을 하직해야만 했다그 먼지와 같이 살다가 가는 인생을 ...........그때는 팔팔한 젊음으로 모여서 떠들썩하게 만나곤 했지만 이젠 어딘가 분위기가 좀 가라앉아 있다.소란스런 분위기가 아니다.사촌 누님이면서도 남동생이 없어선지 나를 그렇게도 좋아했던 정순이 누님은 여전하다.그때는 자주 놀러가고 자주 대화나누곤 했었지총각시절이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런 내가 요즘은 가보지 못하고 있다맘이 변한 것은 아니고 뭐랄가?그때와 같은 그런 정열이 사라졌다고나 할가?성북동이 먼것 만은 아닌데...누님이 소개해준 그 양띠 아가씨..인연이 안되어 헤어졌지만 그녀는 자주 나와 사귀던 시절을 애기한다고 말을 해주었다.긴 시일동안 사귄것이 아닌데 못내 아쉬웠나 보다.누님은 말은 알아서 해라 함서도 날 만나면 그렇게 그녀의 칭찬이 자자했었지....다 흘러간 지난 날의 애기지만 정순누님을 만나면 지난온 날들에서 그래도 자주 만나고 나와 가까운 누님이고 친 누님과 같은 가깝게 지냈다그런 나와 누님간의 거리가 어쩐지 멀어진듯하지만 나와 만나거나 전화하면그렇게 반갑게 해주는 누님...........그래서 난 서울에 살았어도 아니 일가가 많지 않았어도 외롭지 않았다.지금의 상황과는 그때는 판이했으니깐.........내가 외로울때 누님은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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