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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3 일째

비( 퍼온시 )

이수명 비가 내립니다 지붕 위에도 언덕길에도 우산들 위로도 내립니다 한 발자국 내딛기 전에 모든 것을 지우며 내립니다 상점들이 문을 닫습니다 쌓인 물건들이 졸고 있습니다 눈을 뜨지 못하는 피의 흐름만이 홀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면 삶은 거래를 멈춥니다 비루한 전등의 스위치를 내립니다 그것은 전날 가장 약한 손가락을 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우울이 나를 들여다봅니다 매번 다른 손으로 옮겨지기를 기대하면서 같은 얼굴로 나를 들여다봅니다 비가 내립니다 지속시켜야 할 후반전을 또 한 번 놓칩니다 나는 꿈꾸는 동물이 아니라 그저 싸우는 동물입니다 눈을 뜨지 못하는 피의 흐름만이 홀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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