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성북동 妹兄
남산 홍래 형님의 산소일과 우리들의 일이 겹쳐서 성북동 매형도 내려와서 일을 했다헌데 왠일인지 모르게 담날 상경한다고 하더니 당일로 상경하고 말았다그러면 차표라도 주고 가지.......사유인즉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그날 토요일날의 ㅡ 큰어머니 移葬한날...그 일에서도 ....그 가장힘든 일이 바로 사체의 수습이다..6 년째 접어든다는 큰 어머니 산소.그 시신을 수습하고 뼈를 가즈런히 고르는 일..이일이 바로 힘든일이고 쉬운일이 아니다...그때 명래도 그랬었지.7년만에 하는 이장인데도 그대로 물속에 있던 그대로 였고 그대로 있는시신을 어디로 뼈를 추스릴 여유도 없이 그대로 매장하고 말았다....황당했다..당연이 뼈가 있을걸로 상상하였는데 왠걸...그대로 였으니깐....큰 어머니도 그런 상황그래서 그런 상황엔 어쩌지 못하고 견뎌야 한다...성북동 매형이 이런 일을 감당했나보다...그런일을 한단 것은 보통의 비위가 아니면 힘들고 그런 것을 경험한사람은 다시 하고 싶은 맘이 사라지고 만다....아버지와 명래의 이장때도 그랬었지....그 황당하고 참담한 심정....왜 모르겟는가?그런 힘든일을 당하고 거기서 있는단 것이 고역이더란다...ㅡ그래서 서둘러 밤차를 타고 거길 빠져 나왔단 애기였다....몇년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난 아직도 그때의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던 홍래형님...그 무릎까지 빠진 웅덩이에 들어가서 하나 하나 시신을 수습하던 형님.그 악취와 힘든 고역....난 잊지 못한다..그때 서울서 내려온 흥래는 저 멀리 떨어진 나무 그늘아래 멀리 피신하고있었다...오죽했음 상윤형님이 나무라고 그랬을가?- 당신들 왜 외숙 이장한데 온거요?뒷손짚고 이렇게 바라 볼려면 뭐하러 왔어요?하였단 후문이었다..같은 사촌간이지만 물불 가리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든 홍래형님과 그런것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신한 흥래의 얄팍한 속셈.....- 누굴 내가 못잊는 사람이겠는가?그래서 아무리 홍래형님이 날 나무라고 어떤것은 경우에 어긋난 행위를 해도 난 대답을 못한다....그런 은혜를 입었었던 관계로......난 안다 성북동 매형이 얼마나 힘든 고역을 견뎠단것을.....그 누구도 인정을 해주지 않은 그런 힘든 고역.....위로해 드렸다.그래서 도저히 그곳에서 있을수가 없더랜다....도저히 있고 싶은 맘이 없는 그런 심정....효도하고 궂은일은 말로만 하는 일이 아니다...이런일엔 냉담한 흥래...그가 6월 말엔 딸을 혼사시킨단 애기다...왜 그렇게도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이기적인 생각만 하는 것인지?- 그래도 나는 가야 하는거다.내가 할일은 하고서 할말을 하고 싶은 탓이다...내 권리를 부르짖기 전에 의무를 해놓고 해야 하는것이 아닌가?그래서 당당히 가서 축하 해주고 내가 약점을 잡혀선 안된다....나는 그래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당신은?이런 질문을 할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저러나 이런 일을 했는데도 한마디의 안부전화도 없는 그런 사람이 과연 내가 존경을 해줄수 있는 사람인지.......?혼란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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