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4 일째
조카 결혼식
오후 2시 30 분에 상윤형님의 막내아들인 정환이의 결혼식영등포에 있는 르네 상스....로터리 부근이라 하는데 들어보지 못한 예식장이다..고모의 아들인 상윤형님...나완 인연이 깊고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방황의 계절에 상윤형님은 퍽도 친절하게 대해주었었고, 늘 관심을 가져 주었다....- 왜 그렇게도 나를 잘 대해 주었는지 모른다.나 보담은 외숙인 아버지의 그림자가 더 크게 작용한것이긴 해도....아버진..고모집에선 퍽도 畏敬스런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보이지 않은 어떤 카리스마가 아버진 풍겼던 탓이 아니었을가?그 君子다운 풍모였을가..... 아님 위엄이었을가?암튼 어느누구도 넘보지 못한 당신만의 어떤 권위가 항상풍겼다..양반행세를 좋아하고 군자다운 풍모를 풍긴 아버지와 고모부도 죽이 잘맞았던 사이였다...그 많은 처남들이 있었어도 고모부는 늘 아버지와 대화하고 우리집만 왔었지 다른 ㅡ큰 아버지에겐 가보지도 않았었지...대화 상대로 보지 않은 탓이었는가?상윤형님집에서의 기거한 6개월동안...봄에서 가을까지의 그 기간..겨우 6 개월이었지만 왜 그렇게도 길게 느껴질가?그 살았던 기간이 지겨웠던가?아니다..고모부나 고모나 상윤형님이나 형수가 다들 날 편안히 대해주었다그렇게 한창이나 복잡했던 상윤형님의 집...매일 매일이 소란스럽고 자동모터 돌아가는 소리 ..대패소리...끌질..그렇게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는데도 난 편안했다..하긴 난 낮엔 있지도 않았지만...그때의 그 형수의 부지런함..여자이면서도 왜 그렇게 부지런하고 그랬는지?그리고 늘 챙겨주고 늘 신경을 써서 식사도 준비하고...가정주부임서도 목공일을 하는데 같이서 도와주고 그랬던 형수..팔방미인이고 매사가 확실한 성격과 에스와 노가 분명한 성격..눈에 선하다..날위해서 나주극장에도 몇번인가 갔었던 기억이 난다..자기집에 와 있는 나에 대한 에우였던가?대접이었던가?상윤형님의 집..그 시끌벅적한 곳은 내가 머물곳은 아니었다..바로 대로변에 위치한 집이라서 일년내내 그 소음..당시만 해도 형님의 그 목공일은 잘 나갔었다..아니 돈도 많이 벌고 나주에선 그래도 알아주는 기술과 규모였다.그렇게 융성하고 있던 형님의 공장이 난 자랑스럽기도 했다..아버지 조차도 ...내가 학교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그런 목공기술자가 되어 편안히사는 것을 부러워 했을정도였으니.....엊그제 같은데..?그때 내 무릎위에 앉겠다고 다투던 애들이 결혼했고 결혼한단다.아...그 세월...어쩜 그리도 세월은 금방흘러가는 것인가?그 고난의 시간들도 아름답게 그려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늘 갔다오면 반갑게 내 손을 만지며 대화를 하시던 흰 얼굴의 고모이젠 이승의 사람이 아니다..다정한 얼굴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가?지난 날들이 그리운건 ...그 시절로 회귀할수 없단 이유일거다...늘 이렇게 지난 날들이 손에 잡힐듯이 가까이 있단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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