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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1 일째

국익해치는 주적론 ( 퍼온글 )

최근 일부 정치인과 신문이 주적 개념을 들어 국방부를 연일 몰아 세우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런 처사가 정부와 군을 이간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안보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에는 생각이 못 미치고 있다. 특히 국방 의무를 수행 중인 장병들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우리의 안보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주적 개념은 냉전 구조 속에서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러야 했던 우리 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적 특수 개념일 뿐, 순수한 군사 용어라고 할 수 없다. 심각한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들끼리라 하더라도, 상대국을 공식적인 국방 문서상에 주적으로 명시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적이 누구라고 명시하는 것은 국가 이익과 안보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국제 정세 속에서 주적을 명시함으로써 스스로의 행동 반경에 제한을 가하는 처사는 어느 면에서나 이로울 것이 없다. 주적 개념이 국방백서에 명시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안보와 관련한 모든 판단과 계획, 도상훈련, 전투훈련 등은 북한을 일차적인 위협 요소인 가상 적으로 상정하여 준비되고 시행된다. 적어도 군사적으로 북한이 우리의 가상 적이라는 점, 그리고 모든 군사력이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배치·운용된다는 점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평도 해전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우리 군은 튼튼한 안보만이 남북 화해와 평화의 길을 순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주적 개념이 분명하고 안 하고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시스템에 따라서 책임을 다해 수행할 뿐이지, 적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적 개념을 고집하는 세력은 주적 개념을 통해 강력한 대북 적개심을 고취·유지해야 하는데도, 평화 국면으로의 변화로 인해 장병들의 안보 의식이 해이해졌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주장의 결정적인 오류는, 적개심이 강할수록 전투 역량이 강해진다는 사고 방식을 전제로 한다는 데 있다. 국가 간 전쟁을 마치 개인들 사이의 주먹다짐 수준으로 생각하는 꼴이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은 오늘날 국가 간 전쟁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전쟁은 거대한 조직의 힘으로, 무기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냉철하게 행동해야 한다. 분노나 적대 감정은 금물이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 강력한 적개심이 필요하다는 발상은 결국 옛 일본군대로부터 물려받은 잘못된 유산이다. 그들이 우리 나라를 강권으로 통치하고 있을 때 조선인 출신 장병들에 대해 가장 우려했던 점은, 그들이 우리 민족을 동족으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적의 편이나 우리 편이냐를 구분하면서 적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이고 철저한 적개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광복군이나 독립군에 대한 동정심을 지니지 못하게 만드는 특수한 목적을 지닌 처사이기도 했다. 우리는 일본군대의 잘못된 유산을 이어 받은 사람들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겨, 적개심 고취가 군인정신의 기본인 것처럼 강조해왔다. 일본 식민통치가 심어 놓은 독소는 이렇듯 참으로 끈질기고 뿌리가 깊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 적개심은 결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을 고취시키는 것은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과제에서도 어긋나며, 그런 적대감을 정신 교육을 통해 주지시킨다는 발상은 개방 사회에 걸맞지 않다. 민족 통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일부 수구언론은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만은 시대착오적인 편협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역사와 민족 앞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표명렬/전 육군 정훈감·예비역 중장 - 한겨레 신문 컬럼에서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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