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4 일째
대화
어제 민복이의 전화를 받았다.당연히 그 다음날에 전화해야지...말도 안되지..- 바쁘고 몸도 그렇고 해서 오늘 전화했어...암튼 와주어 고마웠어..어떻게 식사라도 하고 갔는지 궁금하고 그랬어..이런 전화였다 그 일상적인 틀에 박힌 인사...그러나 그렇게 전화할수 있단것도 앞에 가려있던 일단의 안개가 걷어진 것이란 생각에 그녀도 나도 마음은 편안했다.그녀와 내가 그렇게 소원하게 지낼이유가 없지.다만 툭툭털고 대화를 했더람 그러지 않았을 텐데도 그녀의 그런 오기와 나의 숙일줄 모른 자존심이 그렇게 긴 세월동안을 침묵으로 지냈다...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민복이완 사춘기 시절에 그렇게도 가까이 지낸 이성이자 친구로 때론 조카 삼촌사이로 친하게 지냈었던 사이였다.그때도 그녀는 자기의 친구들을 한결같이 흉을 보고 그랬고 나에게 고자질도 하곤 했다.그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욕심이었는지 몰라도...암튼 누가 보아도 살결이 희고 통통한 복스런 타입으로 좋아할 정도였다그리도 그 언니들도 시골에서 보기엔 다들 얼굴들이 훤하고 해서 어떤 우쭐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었고....이런 평범한 스타일과는 다른 뭣인가 다른 우월감에 항상젖어 살던 그 집식구들이었다.그러다가 유일한 아들인 창수의 자살로 이어진 그런 비극이 있었다.아버지의 형님인 큰아버지는 능금예와 아들귀남이를 낳았다고 한다그리고 귀남인 경찰로 재직시에 그 6.25시절에 옆사람의 고자질로 산으로 끌려가 무착히 총살당했다고 했다.그 더운 여름날 아버지가 그 조카의 시신을 수습하러 그 산으로 들어가 시체를 헤집고 옷으로 귀남이를 찾아서 매장했다고 한다그런 탓에 나중에 큰아버지는 유공자 가족으로 지원을받아서 살았고 이쁘고 능금같이 생겼다고 해서 능금예가 바로 별칭이 되어 버려서 나중에도능금예라고 불렀다...가난했고 배운것이 없는 큰 아버지는 그 당시에 세도가로 지주로 천석꾼이 박성주를 사위로 만났다고 한다.몇번째 부인인가?그러니까 일제시대였지...민복이 아버지는 그런 지주출신으로 돈이 많아서 그 당시에 말을 타고 다닌 대 부호였던가 보다..그런 부귀를 얻고자 능금예는 팔려갔고 거기서 딸을 내리 5 명인가 그리고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맨날 주지 육림에서 살다보니 그 많던 돈도 다없어지고 패가 망신햇다고 한다...그리고 그 많던 돈도 재산도 땅도 자기가 델고 있던 머슴에게 넘어가서 나날이 그렇게 화병으로 살았던가 보다...어느날 그 동네의 이장인 만옥이 아버지....그는 한때 자기가 델고있던 머슴인 신분이엇지만 지금은 위치가 바꾸어 버린 신흥부자로 행세하고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그는 민복이 아버지를 괄세하고 이장이라고해도 도와준것도 없이 그렇게 대했던가 보다..얼마나 가난했으면 정부서 나오는 담배를 타려고 말다툼하다가 그랬을가?박성주는 결심하고 죽창을 만들어 와서 일부러 시비를 붙였다고 한다 그런걸 알리없는 만옥이 아버지는 그 앞에 속수무책으로 죽창에 배를찔러 즉사하고 그 다음날 지서에서 조사 받고 나오던 그 박성주도 역시나 그죽은 만옥이 작은아버지에게 낫으로 내리 찍혀서 참혹한 죽음을 당했단다..그런 피비린내 난 살육이 있었다고 어머니가 애기해 주셨다...암튼 그런 천석꾼의 부자인 박 성주그리고 그런 돈에 팔려간 능금예...그 말로가 어찌 행복한것인가?아들이 한강에 빠져 죽은 그런 참담함을 목격하고 그랬으니.....그런 연유로 해서 민복인 긍지가 대단하다전에 천석꾼의 딸이었고 인근의 들판이 자기의 땅이었단 사실이 자랑스러웠을가?그런 이면에 바로몇번째 소실로 들어간 자기의 어머니의 위치가 그렇게 떳떳한것도 아닌데.....그래서 그런지 민복인 시기와 질투가 남다르다...대화가 있었고 이것이 바로 화해의 제스처로 받는다...기회있음 다시 재회하자고 했다.이유가 어떻든 이젠 서서히 늙음도 준비하고 이젠 보다 성숙하고 보다는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오늘 민복이의 전화..좋은 결실을 맺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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