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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日目

이모님 인생

시골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을 생각한다.어머니 바로 아래 이모님은 몇해전에 돌아가시고 세째이모님과 네째 이모님이 살고 계신다..네째 이모님인 금례 이모님은 내가 어려서 바로 옆에 사시는관게로 매일이나 얼굴을 대하면서 살았던 것이다.그 금례이모가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분이었고 이모부가 아들이 없는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살았던 것..그 이모부는 외할아버지가 성실성을 인정받아 아미도 데릴사위로 집에들인 사위인 모양답게 성실하고 평생을 당신은 일만하시고 그렇게 남에게 눈꼽만큼도 해를 입히지 않고서 살았던 분이셨다.순박한 농부고 일을 하는것을 천직으로 사셨던 그런 분.....일을 해야만 인간답고 일을 해야만 밥을 먹을수 있다는 마음으로 당신은그렇게 일을 성실히 하셔서 일잘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평이 났을정도로 좋은 분이셨다.그 가난한 시절에 그래도 금레이모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사시는 관계로 생활이 젤로 유복히 보였다.다른 이모들은 한동네 살아도 근근히 풀칠하기 어려운 시절인데도 외할머지댁에 가면 늘 고구마니 떡이니 밥이 있어서 배고픈걸 그곳에서 해결한 적도 여러번이나 되었다..그렇게 외할머니댁에서 식사라도 하고 오는 날이면 아버지께 야단을 맞아도 그래도 난 형이나 동생보단 비위가 좋았던 것인가...자주 가서 얻어 먹곤 했었다.....야단맞는 것보다는 배고푼것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 였다.....그렇게 금레이모부를 데릴사위로 들인것은 성실성과도 관계가 있지만 이모가 그렇게 모가 나지 않고 자매간에도 인정이 넘쳐서 화목을 잘한다고 판단한 외할머니의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금례이모는 언니나 동생에게 인상한번 구진것을 본적이 없었다...- 넘도 욕심이 많아서 탈이야...언니들과도 나눠 먹음 좋으련만..츳츳...하시던 외할머니의 푸념이 있긴했어도 내가 아는 이모님은 착하고 좋은 이모였다...난 가끔 그런생각을 어렸을때 하곤 하였다..- 왜 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어가지 않고 그랬을가?- 왜 외할아버지는 데릴사위로 큰 사위를 마다 하고 넷째 사위를 데릴사위로 들어앉혔을가?- 아버지가 외할아버지의 필요한 노동을 할수 있는 능력이 없고 아버지가 그렇게 호락호락이나 외할아버지의 명령(?)에 듣지 않을것 같아서 그랬을가?왜 아버지는 데릴사위로 간다고 하지도 않았을가? 욕심이 없어선가?데릴사위로 들어갔다면 외할아버지의 문전옥답을 벌고 우선은 생곈, 걱정이 없었을텐데.....암튼 그렇게도 금례이모가 난 부러웠다.딸 다섯이나 되지만 결국은 금레이모가 외할아버지의 총애를받고 대릴사위로 낙점(?)이 되었단 건 바로 외할아버지가 가장 총애하고 믿었던것은 아니었을가?총애라기 보다는 성격이 그래도 잴로 좋은 딸로 보앗을것이다....- 겉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를 안한다....이런 말이 들리긴 했어도 목구멍에 풀칠하는 일이 바로 가장 당면사항이라서 이런 말들이 공허하게 들렸던 것은 사실이었지.남이야 어떻든 그래도 처가살이하든 어떻든 살기가 편한 것임 되는것이 아닌가?하긴 오죽이나 아니꼽고 견디기 힘들엇으면 그런 말이 나왓을가?- 변소와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말도 그렇고....그런 연유였는지 몰라도 늘 이모부는 이모의 음성앞에 기를죽이며 살았던것 같았다..바로 처가에 일을 하기위해서 들어온 사람같이도 주도권을 완전히 이모님에게 빼앗이고 살았던 것같았다.외할아버지가 옆에서 훈수를두어서 그런가?그렇게 일만 평생하시다가 그 이모부는 위암으로 60 도 못되 돌아가셨다.외할아버지가 81새를 장수하시다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을거다..암튼 금레이모는 외할아버지의 그 문전옥답을 고스란히 유산으로 받아서 그렇게 유복하게 살으셨다..적어도 몇년간은....그러다가 그 아들녀석의 생활이 바로 그 문전옥답들을 하나둘씩 처분하다가 집을 사네 뭣을 하네 하더니 다 팔아버리고 이제는 당신의 밭떼기가 한평도 없이 살고 계신다...아들이 둘이고 딸이 둘이건만 그런 어머니를 누가 돌보지도 않고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바로 세째 이모는 기룡이란 곳으로 와서 살고 계시고 딸 춘화가 도와준 탓에 집도 번듯하고편하게 여생을 살고 있다..우리 어머니도 그래도 어떤 애로사항이 없이 살고 계시고 그런데....이렇게 이모들과 비교해보곤 난 묘한 명암을 대비하여 본다..금레이모의 오늘의 상황...애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몰라라 하는지?그리고 그 많은 문전옥답을 팔아다 살면서도 왜들 그렇게도 아직도 힘들게 사는것인지?그건 금레이모의 자식사랑이 바로 맹목적으로 이룬것이란 결과라고 진단한다 당신은 한푼이 없어도 자식들이 말만하면 논이든 밭이든 팔아치워 보내고 그렇게 길들여왔다..바로 당신의 돈독한 신앙심같이 당신은 그렇게 하여야만 부모의 본분인양 하는 것들이 오늘의 애들을 만든것이 아닐런지...가난한 시절에 당신의 애들은 가난이 뭣인지 모르고 잘 살았다..부족함이 없이.....옷이든 먹는 것이든........그때는 바로 먹는단 문제가 가장 화두가 되엇고 가장 절실한 문제였던 시절이라 당연한 일이다...그 이모가 통재하고 애들을 절대로 믿지 않고 좀은 야박하게 길렀다면 애들이 이렇게 살진 않앗을것 아닐가?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던 주위의 이모님의 애들은 그런데로 다들 유복하게 그리고 잘들 사는데 왜 그럴가?가장많은 부와 가장 많은 것을얻었던 그 이모가 오늘은 그렇게 당신의 생계를 위협받아도 누구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도 않으니.....사람의 미래와 현실.....사람의 영화는 누구도 절대로 그렇게 단정짓지 못한단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인간은 현재의 물질 만으로 그 사람이 영원히 부와 행복을 누릴수 있다는 것은 장담을 못한다......사람의 마음속에 간직한 성실성과 할려는 의지가 없으면 무엇도 이룰수가 없단것을 난 느낀다.금레이모가 무작정의 사랑으로 애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고서 모진 마음으로 애들을 채찍질하고 때론 마음을 강하게 가졌어야 하는데 당신은 바로 신앙의 힘이 애들을 무조건으로 사랑으로 감싸줘야한단 것이 마음에 새긴것이 아닐가?당신은 천사처럼 그렇게 살아오셨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맘대로 아니애들이 당신의 바램으로 살아주길 하던가 ....?오늘의 당신의 그런 실정을 애들은 모두 나 몰라라 하는 상황...바로 당신이 만든 자업자득이 아닌가?속으론 울더래도 때론 당신은 그 혹독한 매를 후려칠줄 알았어야 했다..재물은 지닐수 없는 사람은 곧바로 다른곳으로 이동한다...당신은 바로 외할아버지가 몰려준 그 소중한 재산을 지키지도 못하고 몰락하고 말았다...자식들을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못한 관계로...애들에게 삶의 본질을 그저 사랑이란것으로 길른 관계일거다 -아...내가 넘도 애들을 그냥 오냐 오냐 길렀던 것이었을거야...하고 오늘은 후회할지도 모른다...혹독한 가난속에도 애들이 잘자라고 부모의 그런 어려운 시절을 기억하고 이젠 삶에도 여유가 돌고 해서 늙으신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세째 이모와 애들을 사랑으로 감싸준 결과가 그렇게 애들의 나쁜것을 만들어 노년에 어렵게 살고 있는 네째 이모의 인생유전을 목도 함서 난 그렇게 느낀다......- 애들을 사랑하는것은 마음을 유순하게 한다고 하는것 만이 아니다...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것이 곤란하고 어떤것이 추하고 어떤것이 아름답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것이 가장 좋은가?말만하면 사주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가슴속에 간절한 소유를 바래고 그러고 그것이 어떻게 어렵게 얻을수 있는가?하는 어려운 과정을 몸에 배게 하는것이 중요하다...말만하면 금방사주고 애들의 말을 바로 믿어 버리는 맹목적인 사랑..그건 애들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사람은 가슴을 치미는 어려움을 겪은것은 오래동안이나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편하고 수월하게 살아온 기억은 남지가 않는 법이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이렇게 잊지 못하고 남은 것도 결국은 그런 시절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던 것이어서 그럴거다........-애들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모든것은 그저 얻어질수 있는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을 가슴에 새긴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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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91 사랑과 고독, 그리고... 6984 독백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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