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3 일째
책에 담긴 마음 ( 옮긴 글 )
미당의 타계를 다룬 조선일보에는 이런 인용문이 나온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최근 펴낸 산문집 첫머리에서 『인간이 만든 것 가운 데서 모차르트의 음악과 미당의 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모에 단단히 걸어 잠궜던 생업장 문을 열던 새해 첫 날, 벽 크기의 유리창에 비낀 겨울은「캐나다의 겨울」이었다. 흰 눈은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고 제설차는 경고등을 번쩍이며 왼종일 소금을 흩뿌리고, 저 쪽 얼어붙은 호수에선 쇄빙선이 얼음을 부숴대며 뱃길을 트는 그런 광경들이 유리창을 그득 채운다. 라디오는 뭐 그리 신나는지, 강설량이 얼마고 체감온도가 영하 몇십 도라며 연신 떠든다. 생업장은 커피 향미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아침, 영화 의 주인공을 닮은 우체부가 자그마한 소포를 내민다. 이남호 교수가 보내준 새 책. 구랍 20일 인쇄 발행. 채 2주도 안돼 내 손에 들어왔다는 것에 놀라고 반갑고 그리고 감사한다. 이남호 교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한국문단의 평론가다. 어떤 글이든 눈에 닿으면 나는 끝까지 읽어낸다. 책이 나오면 맨 먼저 사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매해 그러하듯, 올해도 신춘문예심사평을 흝어보다가 동아일보 시 부분을 담당했던 이 교수의 글을 만났고, 반가워 얼굴을 떠올렸었는데 뜻밖에 새로 낸 책을 보내 준 것이다. 산문집「혼자만의 시간」. (...)...김소월이 노래한 「산유화」란 시에는 「산에서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을 통해서, 김소월은 혼 자만의 시간이 지닌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말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산문은 모두「단정한 언어」에 담겨있다. 섬세하며 예리하다. 깊다. 그리고 아름답다. 책머리에 (...)마음에 드는 몇 편은 책상 서랍에 숨겨두고 혼자서만 읽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라고 필자는 말한다. 고답적인 평론과는 사뭇 다른 정감으로 다가온다. 토론토에는 「산문마당」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본격문학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었는데, 나는 참관인 자격으로 늘 함께 했었고 문학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기도 하던 자리다. 이 교수가 밴쿠버 UBC 교환 교수로 재임할 당시 「산문마당」자문으로 모시는 다리 역할을 하려 노력했었으나 여의치 못한 것은 지금 돌이켜도 아쉽다. 책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기쁘다. 주는 이의 마음이 맑게 드려다 보이는 듯 하다. 갖고싶었던 책이면 나이를 잊고 껑충 껑충 뛰기도 한다. 지난 세모에 받은 몇 권의 책 선물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사양한 적도 있다. 언제였는지, 언론인 K 씨가 책을 주고싶다고 했다. 1930년대에 발간된 조선문학단편소설집이란다. 덜컥 겁이 앞섰다. 그것은 진본(珍本)임에 틀림없다. 하찮은 내가 받기에는 너무 큰 책이다. 나는 사양했다. 올해 구순인 수필문학의 대명사 피천득 선생 서재에는 의외로 책이 적다고 한다. 제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필요한 책들을 넘겨주기 때문이다. 책을 넘겨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은 글 속에도 보이는 모양이다. 선생의「산호와 진주」를 읽은 소설가 박완서는『마음이 소박하고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지 않다면 절대 쓸 수 없는 글』이라며 부러워하는 걸 보니. 김 훈은 에세이 모음 「자전거 여행」을 내면서 절규(?)한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영상문화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책에 집착하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그래서 이렇게 쓸쓸히 웃는다. (문협회원) - 한국일보 컬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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