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3 일째
알면 사랑한다는데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을 쓴 동물학자 최재천 박사는 소박한 신념이 하나 있다고 했다. ‘알면 사랑한다’는 것이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알면 알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얘기다. 흔히들 정치도 생물이라고 한다. 정치에도 생명이 있어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른 생물처럼 정치도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어떤가. 그 속을 알면 알수록 실망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알면 알수록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고 미워하는 것 같다. ▼YS에 잘 보이기 경쟁▼여당총재인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야당의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지난번 대선(大選)과 그 후 정치판에서 싸울 만큼 싸워 이제 서로 알만큼 알게 됐으니 미운 정이라도 생길 만하련만 현실은 정반대다. 두 사람 모두 상생(相生)의 정치를 하자고 하지만 늘 말뿐이다. 두 분 사이에 신뢰나 존경의 마음은 좁쌀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서로 속이 좁다, 뒤통수를 친다고 하는 판이니 누가 잘못하는지 가리기조차 어렵다. 이래저래 나라 안 공기가 냉랭할 뿐이다.최근에는 ‘안기부 자금’사건으로 양측의 불신과 증오의 감정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이 사건의 성격으로 보아 싸움의 당사자는 DJ와 이총재가 아니라 DJ와 YS(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인 게 맞다. 발생 시기가 YS정권 때임은 물론이고 수사 대상 인물이 모두 YS 사람들이다. 아닌게아니라 판세가 심상치 않다고 읽은 듯한 YS는 수사가 본격화되자 ‘이번 일은 나와 김대중씨의 싸움’이라며 국민이 듣기 민망할 만큼 심한 독설을 DJ에게 날렸다. ‘DJ비자금’에 관한 결정적인 자료를 갖고 있는 듯한 말도 흘렸다. 하지만 싸움은 싱겁다. DJ측에서 별다른 반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DJ측은 그 대신 화살을 이회창 총재에게 날렸다. 당시 신한국당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이었던 이총재가 몰랐을 리 없다며 이총재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라고 다그쳤다. DJ측뿐만 아니라 이총재측에서도 YS는 피해간다. 속으로는 문제의 돈이 YS쪽에서 나온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는 듯하지만 혹시 이런 말이 YS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며칠 전에는 이총재가 상도동으로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이총재는 상황이 유리할 때면 ‘3김 청산’을 주장하다가도 고비를 만나면 YS를 찾아가 엎드리니, 참으로 딱한 이중플레이가 아니냐는 민주당대변인실의 코멘트에 한나라당은 말이 없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양측이 YS 비켜가기, YS에 잘 보이기 경쟁을 하는 판이다. YS 우리편 만들기 경쟁이다. 어느 대권후보라는 사람은 YS를 찾아가 큰절을 올렸다. YS는 더욱 기가 살아날 수밖에 없다. ▼ 2년간의 싸움과 흥정▼또 다른 김씨인 JP(김종필·金鍾泌 자민련명예총재)도 판을 즐기기는 마찬가지. 국민이 무슨 욕을 하건 말건 남의 당 의원으로라도 머릿수를 채워 그렇게도 기다리던 국회원내교섭단체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는 공조복원의 대가로 떨어질 장관 및 정부산하기관장 감투가 얼마나 될지를 셈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의 주변에 감투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판국에 누가 감히 ‘3김정치 청산’을 외치겠나. 정치인이나 정당의 목표는 권력획득이다. 이를 위해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때로는 흥정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최소한도의 염치나 금도(襟度), 원칙 정도(正道) 역사인식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DJ의 레임덕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DJ레임덕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정치의 방향과 가치와 전략이 오직 2002년 겨울의 표(票)에만 매달려 있다면 정치권 전체가, 나라 전체가 레임덕에 빠져 흘러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걱정이다. 국민으로서는 앞으로 2년 동안이나 오직 대권(大權)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진흙탕싸움과 냄새나는 흥정을 보아야 한다면 그것처럼 지겹고 역겨운 일은 없을 것이다.어경택 동아일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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