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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1 일째

태조왕건과 오늘 (옮긴 글)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 에 대해 한 영화잡지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권력의 이기적이고 냉정한 성격의 본질을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서 찾으며 그것을 역사의 전개와 결부시키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10월17일치) 왕권다툼 등을 다룬 사극은 예전에도 많았지만 이 드라마처럼 어떤 신화나 포장도 없이 권력을 향한 벌거벗은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드라마는 없었다는 평입니다. 사실 그런 전문가의 평이 아니더라도 궁예, 견훤, 왕건 등 드라마의 세 주역과 그들을 둘러싼 인물군상이 보여주는 권력쟁취의 역정은 흥미진진합니다. 난데없이 텔레비전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을 보면서 불현듯 오늘의 정국상황이 오버랩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으로 삼분된 정국구도, 권력을 향한 끝없는 쟁패전, 전략적으로 우세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각 정치세력이 짜내는 갖가지 책략,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양태 등 권력의 원초적 본능이 빚어내는 파노라마는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 이 순간의 정치현실입니다. 드라마 에서는 아쉽게도 ‘영웅’들의 야심찬 행보에 파묻혀 고통받고 신음하는 민초들의 모습은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 이야기의 흐름은 궁예가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백성들을 무리하게 징발하고 쥐어짜는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권력의 무게중심이 궁예에서 왕건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대한 배경 설명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미륵을 자처했던 궁예가 민심을 잃으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로 빠져들었던 게 오늘 이 땅의 정치권에는 교훈으로 남아 있지 않는 것일까요. 마진, 후백제, 신라의 권력쟁패전은 그나마 삼한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당위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권력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곧바로 민족 통합의 위업을 달성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정치권의 다툼은 민족의 통합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어느 한쪽이 권력을 재창출하거나, 또는 다른 한쪽이 권력을 재탈환한다고 하더라도 나뉘고 찢겨진 우리 내부의 통합이 이뤄질지는 진정 회의적입니다. 남북 화해와 평화의 문제가 오히려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게 현실임에 이르면 더욱 할말을 잃습니다. 드라마에서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후삼국 시절 각 지역의 호족들이나 백성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은 없었던 듯합니다. 다만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의 군주의 명령에 도리없이 순응할 뿐, 같은 삼한의 민족이라는 동질감은 유지됐던 듯합니다. 권력자들도 백성들끼리의 적개심을 부추겨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정치행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오히려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원초적 지역감정에 불을 댕기는 데 정치권이 오히려 앞장서고 있고, 이른바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은 일반대중의 감정적 골을 깊게 하는 데 한술 더 뜹니다. 최근에는 이런 기막힌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통일연구원 곽태환 원장은 지난 13일 북한사회·인권센터 연구과제 발표회 뒤 점심식사 자리에서 특정지역을 겨냥해 “미국 유학생 중 기숙사 전기세 등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사람들은 모두 ○○도 사람이다. 그곳 사람들은 배신을 잘하며 끝이 좋지 않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미 갈 데까지 간 처참한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도선선사에게 예언을 구해보고 싶은 오늘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email protected] . - 한겨레 신문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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