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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내가 몰랐던 것들

오후 5시 현재 기온 34도,이건 한 여름더위때 기온과 같다.

지금쯤 시골의 한적한 신작로 거닐면 하늘 거리는 코스모스 행렬을 볼것만 같은데

정작 기온은 한 여름의 습하고 더운 기온이다.

왜 이리 계절조차도 찾아올줄 모르고 방황하고 있을까.

 

뜨거운 바람때문에 문을 열어놓을수 없고 에어컨 켜야만 견딜수 있는 기온.

가까스로 6시경이나 되어야 조금 온도가 낮아지려나.

<가을>이란 기분좋은 계절은 여름에 묻혀 지나가버릴것만 같다.

더위때문에 문밖 출입은 생각도 못하고 방구석에서 칩거하면서 유트버로 시간을 떼운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적인 사건들과 순간들.

많은 차이를 느끼고 있는거 같다.

좌우에 함몰되지 말고, 역사는 객관적인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고 써야 한다.

-왜 김 구 선생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던가?

왜 김 일성의 이용당하는줄 알면서도 평양가서 김일성의 연설을 들어야 했던가?

그 당시의 눈으로 바라봐야만 한다.

 

해방이전의  박 헌영의 행적은 우리의 통일과는 무관한 조선노동당 창당만 신경쓴거지

일제로 부터의 해방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인물였던거 같다.

<남로당>을 만들어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했을뿐...

1950년 6월 남침때, 남로당의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나 서울만 점령하면 남한에서 벌떼같이

김 일성을 환호할줄 착각했었다 한다.

서울을 3일만에 점령한 김 일성은 곧 전쟁이 종식될것으로 착각하고 파죽지세로 남으로 진격을 멈추고 엉거주춤 한 사이에 우린 반격할 시간을 벌었던 것이라고 한다.

단 탱크 하나 없은 우리가 김 일성의 지속적인 남진을 했으면 속수무책 밀렸을거란다.

당시 유엔은 북괴의 남침을 규탄하면서도 유엔군16나라의 참전을 하기 전이었으니..

 

주도면밀하게 남침했던 김 일성의 착각.

우린 그의 의도대로 착착 진행될수 없었다.

1953년 휴전이되고, 박 헌영은 외무상으로 부상하지만....

<미군간첩>이란 죄명으로 그의 정적을 처형해버리고 만다.

김일성 같은 살인마가 정적을 그대로 놔둘수 있겠는가? 미국간첩? 얼마나 얽어매기 좋은

구실인가? 멍청한 박 헌영은 결국 이용만 당하곤 처형된 비극의 주인공인 셈.

어디 공산주의 자들이 자신과 대립되는 정적을 보고 있었던 적 있었나? 스탈린도 그렇게

야멸차게 정적들을 숙청하질 않았는가?

1955년도의 일이니,.휴전후 김일성 체제가 자리잡기위한 숙청 아니었겠는가.

 

오직 조선노동당을 창설하여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했던  박 헌영.

김 일성의 정적이  될순 없었기에 처참한 신세가 되었던것.

북한의 외무상이  되자 그의 전처 주세죽이 그를 평양으로 초청해주기를 기원했지만

자신을 배신한 전처를 매정하게 내 팽개쳤다는 일화가 있다.

-어디 공산당이 인권이나 인정을 배풀던가?

주세죽은 결국 시베리아에서 1953년 쓸쓸히 죽어갔다고 한다.

박헌영을 배신한 댓가였나?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인 진실.

파고 들면 들수록 재미가 있다.

고정관념을 깨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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