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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공직에 입문하기위해 나름대로 힘들게 살때..아무런 이유없이 꼭 신원조회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그 날.무척이나 궁금하기만 했지만, 어디서 어떤 정보를 얻어 그걸 풀수 있었던가?
핸폰도, 전화도 하기 힘든 때.장문의 편지.일면식도 없었던 고향의 선배란 이름 뿐..<뵈온적 없는 고향의 선배님 께>아마도 그렇게 썼던거 같다.
-자네 그렇게 궁금하면 법무부 교정국의 <김 연호>씨에게 한번 문의해봐.그 길을 알려준 면사무소의 <고 >주사님.
신원조회가 까다로운 법무부 공무원이고, 교정국이란 곳은 신원이 확실한 사람을선발하는 곳인데,자네의 호적엔 아마도 부친께서 6.25당시 저들에게 협조했다는<부역>이란 것이 호적에 올라있다는 것.처음 듣는 소리다.
연호 형님의 조언대로 차후에 신원조회 나온 순경에게 찾아가 부탁(?)했고..주효해서 합격의 통지를 받았었지.정보에 깜깜해 어떠한 연유도 모르고 지난 1 년,그리고 후에 그런 방향을 알려준 연호형님 덕택에 공직의 길로 들어섰었다.<부역죄>란 어마 어마한거 같지만, 전시엔 적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수 없었던것으로 이리 저리 끌려다님서 노동을 했다고 회고하시던 아버지.-그것도 죄라더냐?어쩌란 말이냐?놈들이 총을 앞에 놓고서 겁박을 주는데 그걸 거부했다간 총을 맞는데....자의 아닌 강압적인 지시에 의한 협조였다고 하시던 아버지.혀를 끌끌 차셨다.어쩔수 없는 전시에 동원되어 끌려다님서 노동을 한거 뿐인데...
순천으로 그리고 2 년후에, 서울로 이끌어주신 연호 형님.
자신의 아파트에서 거주까지 허락해 주셨던 고마운 형님의 은혜어찌 망각할수 있는가?
그 당시 연호형님의 어떤 정보아니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좌절하고 다른길을 걸었을거 같다.면직원 하다가 그곳에서 그냥 눌러앉아 살고 있을지도...<농촌>의 현실이 너무도 싫었던 시절.연호 형님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내 인생을 다른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친동생과도 소통하지 않고 지내는 형님.나를 만나면 친 동생 같아서 좋단다.나도 그런 맘인데....-형님 건강관리 잘 하시고, 자주 자주 만나요 제가 좀 부지런 할께요-그래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