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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젊은시절의 아품은 약이 될수 있다.

1971 년 10월.면사무소 부면장인 당숙의 추천으로 <산업계 >소속의 잠업지도원으로 등용되어 출근했다.비록 임시직이지만, 그래도 당숙의 빽(?)으로 면사무소에 취업된게 그 얼마나대단한것인가.뇌물인지 뭔지 몰라도 그 당시 3 만원을 당숙에게 드렸다.아마,날 취업시키기 위해 군청 총무인사팀장과의 식사비 정도였나?


2달 열심히 다님서 미래의 꿈을 꾸고 있었다.<정식 공무원>으로 비상할 그 날을...-자네 12 월이면 끝나고 다시 발령 받아야 더 다닐수 있어.당숙에게 다시 부탁하던가, 아님 군청 인사담당자 만나봐.후에 면장으로 승진했던 <동해>형님이 정보를 준다.다들 재발령 받기위해 암암리에 손을 쓰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아무런 짓도않고 있는 내가 조금 안되어 보였던가 보다.


-뭘 그래?가만 있어봐 엊그제 들어갔는데 설마 짜르겠어?불안해서 찾아간 날 위한 당숙의 말.그래도 부 면장인 위치의 당숙의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다.불과 2 달전에 부탁하고 거금(?) 3 만원을 줬는데 설마 자르겠는가?그 당시의 농촌의 3 만원은 거금였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다.사실였다.현실은 냉엄했다.1971년 12 월 31 일 면사무소 회식자리에서 재발령 받은사람과 탈락자의 명단을공개했다.나와 다른 사람 3명이 탈락명단에 포함되어 발표.-내년 3 명은 아쉽게 탈락되었으니 그 간 고생했고 쉬시기 바람니다.면장의 훈시.


당숙의 말을 믿지말고 동해형님께 부탁하던가 그럴걸.엎지른 물.어쩔수 없었다.군제대후 사회에서 보여준 쓰라린 맛.현실은 냉정했다.



소위 배경으로 들어온 사람들.배경과 돈을 앞세워 그짓을 할려고 피 터지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업무와 상관없이 배경이 센 사람들은 재 발령 받았었다.


회식 끝나고 귀가하던 그 날.백수가 간신히 들어간 면 사무소 직원.그걸 또 빼앗기고 홀로 돌아오는 발 자욱.무거웠다.<잠업지도원>이 뭔데....???


그래도 군대선 사단 병참부에서 땅땅거렸던 화려한 날들.비참하게 무너져 버린 자존심.동네어귀에 들어가기 전에 있던 울창한 솔나무 숲.한참을 혼자서 울었었다.-내가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존재인가?-학창시절엔 장학생으로 다녔고, 군대선 그래도 주요보직에 선임되어3년간 병참업무를 주무르던 잘 나가던 나였는데....이 초라한 현실, 어떻게 극복할까.


<위기가 기회>란 말.그때, 잘리지 않고 면사무소 근무했다면 후에 면직원으로 마감했을 나.농촌에서 겨우 면사무소 직원으로 정년마치고, 촌놈으로 살았을 나.탈출을 하자.공부했다, 이듬해 드뎌 정식공무원으로 화려하게 출발.그날의 아픈 상처가 아니었던들, 안주하고 살았을 나.이를 악물고 복수한단 신념으로 매진했다.


오늘의 나.만든건 그 날의 쓰라린 상처가 기폭제가 되었을거란 생각이다.젊어 한때의 쓰라린 상처.그건 미래의 삶에 좋은 교훈이 된다고 본다.세모가 다가오니 그 옛적의 아픈 상처가 세삼 떠오른다.-삶은 절대로 포기해선 안된다.비약을 해야 한다.그것이 젊음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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