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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그래도 친척들 모임을 했을땐 집집마다 돌면서 만났는데...하나 둘 세상을 떠나 이젠 그 모임조차도 사라졌다.작년에 모든돈을 청산해서 돌려주곤 끝.-어차피 만나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둘 필요가 없다.얼마전에 돌아가신 <성북동 매형>의 의견을 받아들여 깼다.자신의 운명을 알았던가 보다.
가까운 시일에,분당 누님을 한번 찾아뵈어야지.1977 년 쓰러진 후 적십자 병원에 입원했던 나를 자주 찾아와 손을 잡아주면서 위로를 해주신 그때의 그 고마움.잊을순 없다.<달밤>이란 카스테라 빵과, 후암동시장에서 팔던 떡.그 맛을 지금도 잊을수 없는데 내가 너무 무심한가 보다.
정정하시던 누나도 이젠 83 세의 고령.지난해에 벽에 못을 박다가 넘어져 뇌를 다쳐 외출도 못하는가 보다.외롭고 아플때 찾아와 주는 동생.그것보다 더 반가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생존시에 만남.그것이 중요하지 돌아가신 후에 영정으로 만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그래서 성북동 매형도 생전에 그래도 찾아뵌게 아니던가.
1965 년 6월 26일.서울행 완행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왔던 나.서울역 근처에 사는 누나댁으로 달려가 며칠동안 있었고..-야 이거 신어.그양말 떨어져서 쓰겠니?새 양말을 주시던 기억.부끄럽고,고맙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친남동생이 없던 탓인지 유달리 날 좋아하고 귀여워 해주신 누나.잊어선 안되지.세월은 흘렀지만, 그 정 잊지 않고 찾아가 대화라도 하고 와야지.사람답게 산다는 것어렵다.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