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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준자부두.-형님.-희임이 부부.-손 덕성부부.보통 8 명정도에서 만나곤 하는데...손덕성인 나주에 갔다고 해서 오늘 불참.이모부 제사가 바로 오늘인가 보다.
1969년도 첫 휴가 왔을때 이모부의 임종을 하느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셔서편하게 보내드리고 오신걸 기억한다.항상, 미소띤 얼굴의 자상한 얼굴의 이모부.온순하고, 다정하여 아버지와도 퍽 가까운 사이였었지.
준자 부부도 만난다.결혼을 했을때 그때 군인신분이라 참석을 못하여 후에 휴가시에 함게 기념사진을찍은것을 두고서 말이 많았던 사건.-너 임마 결혼해 놓고서도 않했다고 거짓말을 하니?사진을 보면서 상급자들이 하던말.해명하느라 땀을 뺏던 기억이 난다.준자와 칠영이와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누가 보아도 잉꼬 부부처럼 보였으니, 오해할만하게 생겼었다.
내가 본 여자중에 젤로 미인형으로 손을 꼽았던 동생 준자.그 정도의 미모람 지금 같아선 탤렌트로 나가도 될 정도로 미모인데...이끌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
늘 대화는, 그 시절의 애기로 돌아가 나누곤한다.<범박리 신앙촌>시절의 그 아픔의 시절로 간다.손덕성이가 참석했음 같이 안내원시절의 애기를 시간가는줄 모르게 나눌텐데아쉽다.
<신앙촌 가이드맨>말만 뻔드름했지 그 위치는 건달들이 잠간 머문곳이란 말이 더 정확할거다.1967년 월급이 800원이면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궁금하다.<봉사>란 명목으로 인권비를 그저 용돈정도의 돈 아니었을가?지금 80 만원정도?그 정도의 돈으론 그냥 한달 용돈정도로 밖에 쓸수 없었던 돈 .
그곳에서, 앞으로의 생에 대하여 깊은 고뇌와 또 희망을 꿈꾸었다.<신앙>아닌 잠간 머문곳이란 것.신앙은 명목일뿐,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준자부부도, 진옥이도, 덕성이도..모두 그곳의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들.<신앙촌>입성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들을 알수있엇을까?
애기나누다 와야지.마치 금년의 모든것을 벗어버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