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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그래 저곳에서 한잔했었어

어젠,

비가 내린뒤의 관악산은 참 홀로 보기 안타까웠나보다.

_오늘 별일없음 선호씨랑 그날처럼 2시에 만나 안양쪽서 한잔하는게 어때?"

아침 윤국장님의 문자멧세지다.

선호씨랑 셋이서 2시에 만나 베낭도 없이 빈 몸으로 나섰다.


어제,

비가 상당히 내렸나 보다

낙엽깔린 등산로는 낙엽으로 덥혀 먼지도 나지 않고 공기가 좋아 기분이 상쾌했다

서울대쪽과 반대편인 관악산 둘레길따라 셋이서 걸었다.

1991년 1월 우연히 한 사무실에 계장, 주임, 담당 셋이서 만난게 지금껏 이어온 인연이고 이런 소중한 인연을 간직한 사람들도 드물것 같다.

동 사무소란 우물안 개구리 같이 갖혀 살다가 너른 구청의 기획과에 발령나 한참은 어리둥절하고, 버틸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망설려지기도 했던 시절.

그 인연이 용케도 지금껏 좋은 사이로 만나고 있다.

기획과에서도 <법 제계>는 조금은 한가한 부서

그래서 였던지 우린 선호씨랑 둘이서 근무중에 사교춤을 배우러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한 순간들을 보냈던거 같다.

그땐 그게 능사였을까?

당시 고참계장 윤 국장은 구청 꼭대기 문서보관서의 작은창고서 사무관 시험준비로 종일 보내고 있었으니 가끔 위문아닌 위문(?)을 가곤했다.

사무관이란게 지금의 줄만 잘서면 자동승진되던 시절아닌 철저한 시험으로만

진급하던 시절이라 실력없음 어림도없던 시절 아니던가?


이런 애기 저런애기 하면서 걷다보니 2010년 4월 30일 운명의 그 날.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명>씨와 앉아서 장수막걸리 마셨던 그 자리.

거기서 사단은 발단이 시작되었던거.

남자란 자존심으로 막걸리를 많이 마신 탓에 그날 그런 사고가 발생했고 그건

내 운명을 바꿀수도 있었던 참으로 아찔한 순간였지.

_국장님, 저곳이 바로 그 자리 우리둘이서 막걸리 마심서 허심탄회하게 애기하던

바로 저 자립니다 멀쩡하던 <명>씨가 이젠 고인되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일인지

몰라요.

-그럼 자네가 그때 충격을 줘 그게 발단되어 죽은거 아냐?

그럼 저 자리에서 한번 명복이라도 빌어주고 가야지 안그래?

-그럴까요?


4년전의 쓰라린날의 기억.

너무도 생생하다

화창한 봄날,미모의 여성과 단둘이서 호젓한 숲속에서 막걸리 한잔을 마셨으니

그 기분은 느낀 사람은 알만하다.

퇴원후에, 전화가 없어 왜 전화조차 하질 않았으냐 했더니 나의 위치가 너무도 두렵고 감당할수 없어 못했다고 했던 명.

그랬을까?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단 불안감과 죄책감(?)

고맙게도 안양 샘병원까지 동행해서 안내해주고 간것인데 무슨 죄책감이 든담

고맙고 미안해서 그 후에 노량진의 학원근처에서 식사를 사준게 마지막 본것 같다.

그때도 자세하게 말은 안해도 무슨병인가를 앓고 있었단 것은 느낄수 있었지만

꼬치꼬치 묻는것도 그럴거 같아 생각만 했지만....

_우리집 사람 금년 5월에 저 세상으로 갔어요.

너무도 깜짝놀라 뭐라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남편에게는 단순히 학원에서 차 한잔 마신사이고 공부에 대한 애기를 나눈 사이란것을 애기해줬을뿐 등산까지 한것은 애기할수 없었지.

<명>과는 주로의 대화가 앞으로의 삶, 돈버는 애기, 멋있는 세상사는것등등.

주로 그런 시류잡기가 주류였다.

그렇게도 머리좋고, 명석했던 그녀.

고인으로 되었단 현실앞에 삶의 허무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내가 쓰러졌던 <고향보리밥>집옆에 있는 놀부부대찌게 집에서 셋이서 한잔하고

돌아왔다.

3시간 산행후에 한잔의 술맛.

그건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이젠,

이 선호씨의 아들 결혼식이후에나 한번 만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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