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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갑순 형수님의 영면

어젠,

흑석동 중앙병원 장레식장에 다녀왔다.

사당동 형수(흥래형님 처)가 갑자기 별세하셨다.

아침 5시경에 발인한다는데 거긴  참석은 못했다.

지난 일요일 예배참석하기 위해 목욕탕에서 씻다가 뇌출혈로 119로 중앙병원 왔지만, 이미 심장만 뛸뿐 식물인간으로 며칠을 연명할지 모른단 애길 하더란다.

월요일 중환자실을 찾았을때, 4년전 안양의 중환자 실에서 호흡하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보는거 같아 가슴이 아팠다.

콧잔등은 넘어진 충격으로 피멍이 든 상태로 혼수상태로 눠 있는 형수.

그래도 그렇게 쉽게 세상을 떠날줄 몰랐는데.....

별세하시기전에 찾았던게 그래도 조금의 위안은 된다.


노갑순 형수(76세)는 한많은 삶의 족적을 남기고 영영 떠나셨다.

부유한 봉학의 딸로 태어났으나, 흥래형님과의 결혼으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몇년전엔 멀쩡한 두째를 횡성에서 잃으셨으나, 신앙심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견뎌오셨는데.....

이렇게 쉽게 가실줄 상상하지 못했다.

사당동이 먼 거리도 아닌데 생전에 찾아뵙지 못한게 죄스럽다.

흥래형님과의 편안한 사이가 아니어서 4촌이긴 해도 먼 친척으로 살아왔다.

너무도 이기적으로  세상을 산다고 늘 흉을 보는 후암동 누나.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올케 보러와야 하는거 아닌가?

가시는 분은 죄가 없는데.....


와이프랑 동행으로 머물다 왔다.

보면 볼수록 와이프도 수척한게 내 죄인듯 맘이 아프다.

<당뇨병>에 걸려 제대로 음식섭취와 운동을 하지 않은 탓에 점점 건강이 나빠져

야윈 몰골이 보기가 안됐다.

남편의 충고를 왜 그렇게도 무시하고 자신의 잣대로만 건강을 챙기는지 모른다.

그 고집은 장인에게서 몰려 받은 고집인거 같아 안타깝다.

나이들면 별볼일 없는 고집만 부린다더니.....


고인되신 형수는,

그 삶의 족적을 늘 곁에서 봐서 너무도 잘 안다.

동자동의 4평이나 될가말가 한 판자촌.

단칸방에 작은 부엌, 그게 집의 구조가 전부였다.

그런곳에서 사는 모습을 보곤 서울의 생활이란게 얼마나 힘든가를 알수 있었다.

정금이 누나도, 광래형님도 그 인근의 판자촌.

그후에, 철거민 정착촌으로 지정된 성남으로 이사를 갔었고...

명절이 되면 그 먼거리 세곡동까지 인사다녔던게 까마득한 옛날.

그때도 형수는 얼굴에 힘든 표정없이 늘 다정하고 인정넘치는 모습으로 맞아주곤했던 좋은 분였다.


변변한 직업도 없던 형님은 형수를 고생 고생을 시키면서도 군림하고 멸시하는 행동을 몇번이나 봐서 잘 안다.


80 넘으신 형님의 몰골이 불쌍해 뵌다.

"형님 이젠 아들과 합치나요?"

"이대로 그냥 살거야 그게 편하지 뭐하러 합치나? 그냥 살거야."

세곡동의 땅을 팔아 사당동에 28 평의 연립주택이 재산 전부다.

지하실이라 몇푼이나 갈지?


이젠,

그 포근하고, 다정한 눈빛도 영영 볼수 없게 생겼다.

가는건 맞지만, 76 세라면 너무도 아쉽게 가신것.

누가 이렇게도 쉽게 가실줄 상상이나 했으랴?

우리네 삶이 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하는데........

"형수님, 영영 편안히 쉬세요 너무도 힘들게 산 세상였어요

그곳은 편안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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