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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상윤형님마져 병마에 쓰러지다

_나주 상윤형이 암이란 진단받고 서울갔다네 한번 찾아가게.

홍래 형님의 다급한 전화 받은건 며칠전.

자주 통화했지만 핸폰아닌 일반전화로 한 탓인지 핸폰번호가 없다.

형수님의 핸폰은 이미 오래전번호라 연결되지 않는다.

미리 입력을 해 놓은건데 무심한 탓에 이런걸 어쩔건가.

조카 문환인 아무리 눌러도 연결되지 않는다.

답답해서 어젠 시골의 상구형님께 물어보라 했다.

알려준게 문환 번호다.

 

드뎌 문환이 전화가 왔다.

_미리 드렸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못전해드렸어요 죄송해요.

_임마, 그럼 못써 네 아버지와 나완 고종사촌이야 알고있니?

친형제빼곤 가장 가까운 친척인게 바로 사촌간이야.

헌데 그렇게 밖에 넌 생각을 못해?

-워낙 경황이 없어서요.

 

식도암 3기며, 의사의 말이 완치는 어렵다고 하면서 최선을 다해보자했단다.

식도암3기?

어려울거 같다.

불과 얼마전에 통화했을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식사를 못하고 눠 있단애길듣고

종합병원서 정밀진단 받아보라 했는데 결과가 그런가 보다.

 

고등학교 교사인 큰아들 문환, 목사인 둘째 아들.국회의원 보좌관인 세째.

그런 멀쩡한 자식들이 있음 뭐하나?

자주 연락해서 부모의 건강을 챙겨주고 예방을 해줘야 하는게 도린데....

80이 못된 연세에 가야한다니 너무도 불쌍하다,

 

비록 당신은 교육을 못받고 자랐지만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을 대단헸던 형님.

나주서 내로나 하는 일류가구 기술자로 명성을 떨쳤던 형님.

가구 기술자로써 당신의 솜씨를 따를자가 없을 정도로 명성을 떨쳐 지금처럼

명성있는 가구가 나오기 전인 60년대 초.

돈도 엄청 벌었었다.

그런 아들을 둔 고무부가 부러웠던지 아버진 형님을 상윤형님 밑에서 기술을 배우라 했지만 적성이 맞지 않은 형님은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미움도 샀었지.

농사짓고 사는거 보담 얼마나 좋은 직장인지 모른다 그시절은...

 

군재대후,

삼포면사무소에 임시직으로 근무할때......

아버지의 권유로 형님집에서 출퇴근하고 살았었다.

고무부와 고모, 그리고 상윤형님내외와 조카 셋.

이렇게 적지않은 식구들과 함께 산단게 퍽이나 불편을 했어도 전혀 그런기색을

보이지 안았던 형님내외.

마치 친 동생처럼 대해준게 지금도 잊을수 없다.

형님도 형수도 고모도 낯설지 않은데 왜 그렇게도 고모부는 어려웟던지...

하두 양반가문을 자랑하시던 분이라 조금이라도 예의가 벗어나면 불호령을

떨치던 분이라 그런거 같다.

 

상윤형님은,'

아무리 화가 나고 술 주정을 해도 나에겐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정이 많은 분이라 그런가?

고모가 하두 아버지를 챙긴 탓에 그런건가?

극장가는게 쉽지도 않았던 시절에 가끔 날 델고서 극장구경을 하곤했다.

6개월정도를 침식을 한 세월.

어찌 보면 아무런일도 아닌거 같아도 대가족도 바쁜데 나까지 배려를 해준 형수님을 잊지 못한다.

 

그런 자상하고 좋은 분이 이젠 불치의 병일지도 모를 식도암 3기라고 하니

그 간의 너무도 무심한 내가 너무한거 같다.

 

<일산의 병동>으로 이송한뒤에 알려준단 문환.

정신이 멀쩡할때 찾아가 손이라도 잡고서 위안을 드려야지.

고모님의 자상한 성품을 그대로 몰려받은 정많은 형님.

용기 잃지 말라고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와야지.

점점 주위의 형님들이 병마에 신음하는걸 보니 세월이 무심한거 같기도 하고

머잖아 내곁을 떠난단 생각을 하니 세상이 참으로 허무한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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