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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몇십년만의 해후냐?

범계역 부근 뉴코아내 예식장에서 친구 우체의 아들 결혼이 있었다.

먼 거리지만 가야했다.

결혼식만 아니라면 j와 개화산등산도 좋은코스인데 아쉽다.

 

우체의 매형이 바로 한 마을에 살았던 윤섭형님.

그 형님과 부부의 인연을 맺어 백년해로하고 있다.

 

1972년도 9월에 순천으로 발령을 받아 찾아간곳.

설렘과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찾아갔지만 모두들 아는얼굴들이 없어도

윤섭형님이 먼저 발령받아 있어 맘은 차분했다.

기댈수 있는 끈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염치불구하고 찾아갔다.

따뜻하게 대해주고,이끌어 줬다.

얼마동안인지는 그 당시의 일기를 들쳐보면 알겠지만 상당한 기일동안 함께 기거

하고 살았던거 같다.

어쩜 생각하면 귀찮기도 하고 그럴텐데도 전혀 그렇게 대하지 않고 좋은 모습으로

대해준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행운아 여서 그런건지......

 

허지만,

함께 순천에서 근무함서 있었던 기간도 단 2년을 채우지 못하고 1974년 5월 서울로

와야만 했던 나와 그곳에 머문 윤섭형님.

못내아쉬움으로 헤어지곤 첨으로 만났으니 30여년을 훨씬 넘긴거 같다.

첫 발령지를 한번도 떠나지 못하고 정년퇴임하여 이젠 순천사람이 되어 버린

윤섭형님 부부.

오래만의 해후가 마치 이산가족처럼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껴앉고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이런게 정이 아닌가.

 

한때는 한길을 걸었고 한 지역에서 머물면서 대화도 나눔서 미래의 꿈도 꾸던

우리들이 이젠 순천사람과 서울사람으로 나눠 버렸다.

어떤 순간에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윤섭형님.

의리와 정으로 맺혀진 심성을 알기까지는 긴 시일을 요한다

그만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놓지 않아 파악이 어렵지만 알면 그를 배신못한다.

예식장 한구석에서 애기를 나눴지만 긴 애기가 아쉬웠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거 같은 사연들.

다 과거가 되어 버린  것들이지만 얼마나 그립던 추억이냐.

 

오늘이 있게한 첫 발령지 순천 교도소.

회색 건물이 산밑에 있는 풍경은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한치의 벗어남도 허용이 되지 않았던 숨막힌 그곳 생활들.

공직자가 아니라 죄인과도 같은 그런 숨이 막혀왔었다.

"교도관이란게 이렇게도 힘든 직업인가?

그래서 성직자의 심정으로 근무해야 한다고 했나?"

 

고향과 가까운 순천을 버리고 서울로 간단말에 못내 서운한 표정의 아버지.

그 서늘한 눈매가 너무도 슬펐다.

지금은 서울이 지척인데도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진건지....

오늘 윤섭형님을 만나니 순천의 생활들이 엊그제 생활같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게 세월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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