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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의미있는 날

1966년 3월 11일.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날이라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 죽는 날까지도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치매 걸리지 않는한....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탓에 고향을 떠난단건 그 당시로썬 참담한 슬픔과 각오가

없었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모 할머니의 환상적인 애기에 넋을 잃고서 듣고 있다가 내가 갈곳이 거기란

생각에 개나리 봇짐을 지고서 따라나선 거기 christian town.

첫눈에 성지에 들어선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잘 정돈된 도로며,

반듯하고 아담한 집들,산꼭대기에서 빛을 발하는 오만제단 건물의 불빛.

 

첫눈에 보인게 그거였다.

단 하룻밤 새우곤 경제는 더 이상 머물곳이 못된다고 그대로 하향해버리곤

난 남았지.

어쩜 그게 운명을 가른 계기가 된거 아닐까.

 

거기서 머문시간이 불과 2년에 불과하지만....

뇌리게 깊이 새겨진건 왜 일까.

한참 방황하고, 한참 꿈을 펼쳐야 하는 시절이라 그런것일까.

허나,

내가 설자리가 없었다.

신앙심도, 돈도, 어떤 것도 내가 마땅히 설 자리가 없었다.

부모님 보호아래 편히 살다가 남의 밑에서 돈을 벌려고 달려드니 한파는

너무도 춥고 힘들었다.

 

동생 준이 추천해준 범박리 비닐공장.

두뇌도,필요없는 오직 손 놀림만이 잘해야 그 나마 돈을 벌수 있는 곳.

잘 할수가 없었다.

몇개월하다 박차고 나와 춘천으로 나들이 했고,다시금 c.t로 귀촌해서

<안내 사무소>에 둥지를 틀었다.

나 같은 얼치기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낄수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변변한 찬송가 한곡 제대로 못한 주제에 그런 위치에서 근무하다니....

 

많은걸 배우고 느꼈다.

그건 경험으로 타산지석으로 삼기도 했다.

2년간의 타향경험과 단체생활은 군대생활이 하나도 힘들지 않을거란 자부심에

당당히 입대할수 있었다.

 

해 마다 이 날이 돌아오면 그 날이 생각난다.

영등포역서 시외버스를 타고서 40 분간을 달려야 가는그곳.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경인도로가 오직 그 길밖에 없었으니 당연하지.

오만제단 오르는 길에 있는 제 4 숙소 부근.

거기서 소사역을 바라보면 황금벌판으로 벼들이 물결치던 모습이 엊그제 같다.

<소사극장>자린 지금 뭘로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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