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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6.25전쟁 전야

낼은,

<6.25전쟁> 61돌이다.

정확히 25일 새벽 4시 김 일성은 3.8선을 노도와 같이 밀고 내려왔다.

탱크를 앞세운 화력앞에 우린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서울을 3일만에

내줘야 했다.

북침을 했다면 과연 그런 전쟁을 할수 있는가?

도둑처럼 남침을 감행한 자들이 북침 운운함서 자신들의 행위조차도 정당화하려 한다.

 

김 일성의 음모조차 모른채,

61년전의 오늘의 서울.

6.25전야는 토요일이라 모두들 외출에 외박에 들떠 있었던 분위기.

그걸 노린 김 일성의 야욕도 모른채 참으로 평화롭기만 했겠지.

생각하면 전율스런 전야.

 

김 일성의 침략야욕도 모른채,

저들이 처들어 오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수 있습니다.

함서 북한의 야욕을 과소평가했던 신 성모 국방장관의 안이한 사고방식.

호시탐탐 김 일성의 특이한 동향을 잡고서도 애써 외면한건 왜 그랬을까?

'설마'그런 맘이었나?

 

위정자들이 정세판단이 빠르고 대처했더라면 어쩜 6.25전쟁은 미연에 방지했을지도 모른다.

김 일성의 야욕을 간파했더라면 대책을 세울수 있었을거 아닌가?

전쟁이 발발한 당일엔.

이 승만 대통령은 경회루에서 낙시질을 하고있었다 한다.

그 정도의 깜깜한 정보에서 어떤 일을 할수 있겠는가?

당할수 밖에.....

 

3일만에 서울을 빼앗은 김 일성은 의기양양하여 서울을 왔단다.

마치 ,

자신이 통일의 주역이나 된거 처럼......

 

위기에 처한 우리의 운명.

바람앞의 촛불과 같은 운명였지만......

정의앞에 김 일성의 야욕은 접어야 했다.

유엔의 깃발앞에 모인 16개국의 참전국지원.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과 압록강까지의 진격, 그리고 통일의 순간.

바로 눈앞에 통일을 두고서 우린 눈물의 후퇴를 해야 했다.

꽹가리를 앞세운 오랑케 중공군의 인해전술.

눈물의,

함흥철수작전.

 

민족의 반역자 김 일성의 불장난으로 우리의 선량한 국민들이 얼마나 죽어가야 했으며

자유의 사도로 우리나라에서 죽어간 16개국의 외국인.

지루한 3년간의 민족전쟁.

61년전의 흔적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엄연히 휴전선으로 남아있다.

휴전이란,

전시중에 잠간 쉬는기간 일뿐 전쟁의 종결은 아니다.

 

아직도,

동족으로의 신뢰를 못하고 으르렁 대야 하는 현실.

비극이 아니고 뭔가.

6.25를 맞음서 우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을 과소평가한다는것.

경계하고 정확한 정보로 미연에 대처해야 한단것.

그건 힘의 우위만이 평화를 지킨단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날, 김 일성 일가의 범죄는 역사가 증명하리라.

언젠가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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