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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너무도 선명하네

총각시절에 참 부모님의 애간장을 많이도 썩였나 보다.

부모님의 주선으로 몇번이나 맞선을 봤지만....

번번히 퇴짜를 놨으니...

그럴 처지도, 위치도 아님서 무슨 뱃장였을까?

 

고향에서도, 서울에서도 몇번을 봤던지 모른다.

보다 보니 눈 높이도 높아만 간건가.

전에 그리던 이상형은 또 다시 높아만 가고 또 다시...

-저러니 장가 못가지.

모두들 그랬었지만, 게의치 않았다.

-못가도 좋다.

내가 꿈꾸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혼자 살지 뭐.

결혼이 뭐 대수론거야?

 

어느 겨울,

눈 보라 치던 날.

아버지의 친구이자 가까운 마을에 사는 분의따님과 맞선.

그 분은 맞선을 보기도 전에 날 미리 찾아와 나 모르게 테스트까지 했었다고 했다.

정작 따님도 별로 맘에 차지도 않았는데...

-그 처녀 어쩌더냐?

-무어 끌리는데 없고 그저 그렇고 그래요.

또 차차 찾아볼께요.

-이놈아,

항상 부모가 네 곁에 있다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수리를 망치로 내리친거 같은 충격을 받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저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래 내 고집만 부릴께 아니라 부모님 생존시에 가자 그게 효도야.

이러다 장가도 못가고 부모님 돌아가심 불효중에 불효야>

그후론,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조건적인 반대보담 조금은 100% 아니어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게 너무 성급했을까?

오후에 선약을 한 사람을 두고 짬을 내서 본 선.

그게 지금의 와이프가 되어버렸다.

마치 내 맘을 읽은듯 어쩌면 그렇게 맞게 애길 해 주던지..

그런 순간적인 콩깍지 때문에 발목이 잡혀 이런 모양이 되어버렸지만...

원인은 아버지 말씀의 충격이 컸다.

 

결혼도 운명이고 삶도 운명이 아닌가?

와이프가 지금에사 50%의 만족도 주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보기로 했다.

-이 사람을 만나서 그래도 이 정도의 행복을 영위하는걸로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더 큰 불행을 당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자족이 편하다.

 

아버지 가신지 25년이 지났지만,

그 말씀과 표정은 지금도 너무도 생생하다.

난,

애들에게 그런 말을 해선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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