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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생사만은....

-김 수종부친 어제밤 별세

20일 8시 발인 발인은 안동 병원 영안실.

아버진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아침에 날라든 문자멧세지 한통.

드디어 가셨구나.

암으로 고통속에서 지낸단 애길 들었던건 지난 여름.

수종씨도 머리를 삭발하고 서울대 병원에서 투병중에

그런 소식을 들었었다.

 

김 수종.

<일기>라는 메체를 통해 알게된 대구 아줌마다.

서로 자신의 일기를 공개하고 읽다가 공감을 느끼고 느낌을 달다보니

교감이 통했던가 보다.

그렇게 얼굴한번 보지 않고 대화만 나눈지 몇년인가?

지난 여름,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위문을 갔었던게

첨 만난 것

꼭 7년만의 해후다.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비슷합니다

-그래요?

전 전혀 아닌데..??

그랬었다.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수종씨는 전혀 아니었다.

발랄하고 활달한 성격의 그런 수다스러운 여자로 알았는데 너무도 침착하고

조용했다.

갸름한 얼굴로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사진관 딴판.

어쩜 사진으로 상상한 것 보담은 실물이 더 나은거 같았다.

 

얼굴한번 보지 않고도 우린 긴 대화 나눴다.

직업군인인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가 없어 늘 외롭고 그랬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결심했었다고도 했다.

-난 날 배신때린 그런 자와 도저히 함께 살아갈수 없어요

그래서 이혼하자 했지요.

-그래도 이혼은 좀 생각을 깊이해 보구서 결정하세요

그건 헤어지면 다시 합친단것은 더 어려우니..........

그런 와중에 병마에 휩싸인 그녀.

팔팔한 삼십대의 나이에 병마에 싸우다니 너무 안되어 보였다.

머릴 삭발한걸 보면 암  같은 불치의 병인듯.......

 

서울대 병원을 찾았어도 점심은 너무도 간단히 먹고 말았다

병원 주변이 늘 그렇지만 너무도 먹을수 있는 좋은 식당이 없다

잠간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만났을뿐...

긴 대화는 담으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보내준 몇장의 헌혈증서.

갖고 있는게 적어 한이었다.

 

안동까지 갈순없고 그녀의 계좌로 10만원 부의금을 보냈다.

서울이라면 당연히 가서 위로해 줘야 하지만........

 

자신의 부친이 별세했어도 병실조차 나설수 없는 신세라니

이 무슨 얄굿은 운명인가?

아버지 별세시에 자식의 위치로 참석할수 없었던 동생 명래.

그녀석도 그렇게 땅을 침서 울었단다.

자식이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참석할수 없는 신세란 기가 막힌 일이지.

허나,

어쩔건가, 병마와 사투를 벌어야 하는 입장인걸.

그런 사투가 보람도 없이 동생은 겨우 5년간 더 살다가 결국 아버지 뒤를 따라

갔다.

지금의 수종씨의 심정이 그런 심정아닐까?

가슴을 치고 싶은 안타까움.

-수종씨, 너무 슬퍼 마세요

아버진 어쩜 고통없는 편안한 곳으로 가신거니까  고통받고 사신것 보담

더 나은건지 모르잖아요.

연세도 결코 서운한 연세도 아니니까.....

-고마워요.

 

내일을 알수 없는 우리의 생과 사.

 그 생기 발랄하고 상큼한 여인인 최 진실이 오늘날은 추억의 이름으로만

새기게 될줄 누가 상상했으랴......

 

<삶과 죽음>만큼은 우리의 영역이 결코 아니다

신만이 할수 있는 일일뿐.

오늘 전재하다고 해서 낼도 건재하다고 감히 누가 애길 할수 있으랴...

돌아가신 아버지 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병실에서 슬픔에 잠겨있을 그녀에게

자주 전화로나 위로 해 주자.

외로울때의 단 한통의 전화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던가......

<수종>씨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 본다.

부디 편안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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