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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2002. 9월 3일. 썼다 지우는 일기( 길은정)

*길 은정의 일기에서 퍼온 글 *.. 어제도 일기를 썼었다. 그러나 금세 그 글들을 삭제해 버리고 말았다. 병원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분노.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지금은 결혼해 잘 살고 있는, 한 때 아주 짧은 기간, 내 곁에서 셀 수 없을 만큼 가식을 보였던, 그래서 내 스스로 치를 떨었던, 어떤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 그와 헤어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을 말했어야 했던 나 자신에게 나는 무척 분노를 느꼈고 진실을 다 말해버려? 아니야, 그래선 안돼! 하면서 갈등하느라 쓸데없는 시간을 오래 보냈다. 어제의 일기는 아무래도, 치미는 분노를, 이성으로 절제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느껴졌었다. 그래서 이미 썼던 일기를 삭제해 버렸는데..... 오늘도 역시 어제의 감정이 내내 이어지고 있다. 이건 아주 못된 마음인데..... 그래서는 안되는데.....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세상에 외쳤었다. 벌써 몇년이나 흘러간 오래된 이야기인데.... 왜 아직도 나는 그 털어놓지 못한 사실 때문에 생기는 분노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지, 내 자신이 한심해서 미칠 지경이다. 병원 상담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날은 어김없이 그렇다. 내 마음속엔 아직도, '왜 하필 목표물이 나 였어!' 하는 억울함과 분노,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 원망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날이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고해를 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바보일 뿐이다. 그 바보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세상사, 온갖 감정들을 노래에 실어야 한다. 낮시간 활동적인 움직임과 방송, 콘써트를 위한 밴드와의 만남, 그리고 연습, 그런 순간에는 완전히 잊고 있던 감정들을,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어느새 잊고 다시 예전에 풀어내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수 많은 에피소드들이 머리속에 떠올라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나는 절대 착한 사람이 아니다. 바보일 뿐이다. 이런 내용의 일기를 쓰고 나면, 반드시 비난과 비아냥거리는 멘트가 달릴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과 손가락이 따로 움직이는 로보트 마냥 자판을 두두려대는, 나는 바보다. 오늘까지만 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암 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배신감이었다. 정말 오늘까지만 이고, 이제는 그만 잊었으면 좋겠다. 카메라 앞에서만 눈물을 보이는 가증스러움. 병구완이란 없었던 방치된 생활. 무례한 행동. 대화 소통의 근본적인 문제. 무기력하게 아파 비명을 지를 때 조차 혼자 있었던 일. 내 인공항문을 농담의 소재로 삼던 일. 병실에서 수술후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결혼 발표 기사가 실리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일. 아파 헤매고 있을 때, 기어이 혼자 혼인 신고를 했던 일. 내가 원하지 않았던, 하지 말자고 애원했던 결혼식을 감행했던 일. 그 때의 내 홍수같은 눈물을 사람들은 오해했었다. 나는 이게 아닌데... 내가 왜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있나... 라는 회의와 그럼에도 무기력한 나 자신에 대한 불쌍함 때문이었는데,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 때라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리지 못한 용기없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나를 이리도 괴롭히고 있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한 후에, 방치라는 상황에 놓여야 했던 일.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눈물 짓던 그의 언어들. 내 물건을 가차없이 버리고 내 집을 자신의 집으로 꾸며 놓았던 이해할 수 없는 일. 병원치료에 한 번도 따라가 주지 않았던 무심함. 병원비에는 관심도 없었던 사람. 내가 무슨 치료를 받는지, 얼마나 힘겨운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어덯게 도와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었던 이기심.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그의 복잡한 이성문제. 나에게 속였던 나이와 경력, 그리고 또 무엇...... 나를 몹시 버거워 하던 사람. 그러면서도 나를 쉽게 속일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사람. 무책임하게 자동차 할부금을 내지 않아 압류통지서가 날아올 때까지도 신경을 쓰지 않아, -그것도 석대의 자동차 - 내가 대신 한달에 몇 백만원씩 내줘야 했던 일. 내가 119 구급대에 실려가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동안 병실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새 자동차를 사는 일 때문 이었다는 사실. 이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으면서, 내게 듀엣곡을 부탁하고 녹음 장면을 찍기위해 연예가 프로그램 카메라까지 동원했던 치밀한 작전. 그리고 어김없이 카메라 앞에서만 눈물을 흘리던 사람. 그리고 나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지고 자상한 이로 인식받는 사람. ....... 그리고 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엇 무엇......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 그렇다면, 암에 걸린 사람과 부리나케 혼인 신고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의문을 가지게 하는 사람. 내 건강이 차츰 좋아지자, 서슴없이 단 5분만에 헤어짐을 결정한 사람. 그러면서도 방송에서는 다른 내용을 거리낌없이 말했던 사람. 모든 책임은 내가 다 뒤집어 쓴 다는 조건으로 했던 헤어짐을 위한 기자회견. 그는 그 자리에서도 눈물을 흘렸었고 나도 울었었다. 그러나 그 눈물의 의미는 서로 너무나도 달랐을 것이다. 빅쇼에 깜짝 출연했을 때, -나는 그의 출연을 원하지 않았었음 - 내 분장실에는 들르지도 않았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무대에서만 잠깐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는 모습을... 그게 진실인지는 나는 믿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그 때 그의 분장실에는, 지금 그의 아내가 된 여성을 비롯해서 많은 여자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순서가 끝나고, 끝내 나를 만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가 헤어지기로 하고나서부터 그는 얼마나 행복한 웃음을 지었는지 모른다. 물론 나는 금방 죽지도 않았고 아픔 때문에 몸부림치고 외로움에 울부짖었엇다. 더불어 짜증도 많았었다. 그런 곳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이 그를 얼마나 홀가분하게 했을까?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이미 멋진 남자로 각인되어 있으니, 두려움도 없었을 것이다. 토크 프로그램 출연에,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렸는데, 기어이 제작팀은 그를 섭외했고 나와 함께 출연시켰다. 그는 역시 나를 무척 걱정하는 듯, 친구처럼 돌봐주고 가까이 지내겠다고 했었다. 이미 그 때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가끔 주위 사람들을 통해 내게 이런 말이 전해져 왔다. '그 사람, 길은정 병원비 내고 병구완 하느라고 돈 다 날렸대요' 하는 따위의 말이다.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의 돈은 써 본적이 없다. 내가 벌어 내가 썼고, 병원비도 내가 냈다. 그동안의 치료비 또한 내가 냈으므로, 그런 종류의 소문은 어디에서 흘러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근거 없는 소문이 내 귀에 들릴 때마다, 내 가슴은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 그사람이, 갑자기 내게 친절하기 시작했었는지, 전에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 아픈 나 한테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그와 헤어지고나니, 그동안 침묵하고 축하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의 지난 날의 행적과 차마 믿지못할 과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 바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게 조언 한 번 해 주지 않았는지, 일이 커지고 서로에게 상처가 남은 후에야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아무래도 끝내야 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그래라' 라는 단 한마다로 허락을 받았었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 이 말은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에 국한 시켜서 해석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 안에는 아무리 나를 힘들게 했던 이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이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만난다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배려, 원수를 사랑하라 했듯이, 용서하고 감싸안는 포괄적 의미의 사랑을 말한다. 나는 그를 이성간의 감정으러는 사랑하지 않았지만, 헤어지면서, 그나마 그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로 인해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로 대답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보면 거짓만은 아니다. 아주 포괄적인 인류애 같은 것, 그것 또한 사랑은 맞지 않은가? 단지 해석하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일 뿐이지.... 어쩌다 텔레비젼에 잠깐씩 비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급격히 우울의 늪에 빠지고 만다. 그는 여전히 기름기 흐르는 얼굴로 빙글빙글 웃으며 스타의식속에 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 묻고 싶다. 그가, 왜! 수 많은 여자들 중에서, 아픈 나를 목표로 삼았었는지..... 물론 처음엔 진실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변함없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숙제는 너무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잊으려 한다. 아직 못다한, 말로 해서는 안되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대로 접어두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노와는 작별을 고하려 한다. 나는 그를 완전히 내 기억속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그리고 내 어리석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할 것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마음안에 원망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그리고 나는 바보다. 오늘까지만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가 했던 행동, 그가 나를 이용했던 여러 일들.... 그 모두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내 마음속의 분노와도 영원한 작별을 하려한다. 앞으로 나는 그런 소모적인 생각보다는, 생산적이며 귀한 작업들을 꾸준히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때, 수렁에 빠졌다가 나와 밝은 햇살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맑아지려 한다. 조금이나마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하지만, 오늘의 이 일기로 인해, 나는 무척 비난 받을 것이다. 그 보다 더 큰 일이 일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마음안에서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을 조금 풀어놓는 것으로, 내 마음은 자유를 찾은 듯하다. 이런 종류의 글은 절대로 쓰지 말라고 그래봤자, 나 한테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고 조언해 준 이에게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오늘까지만이다. 이제는 잊겠다. 그리고 그 열정을 노래나 방송에 쏟겠다. 그러다보면, 남자에 대해, 경계부터 하고 있는 굳게 닫힌 마음도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오늘 나는 최고로 나쁜 여자가 되었다. 나는 참 바보다.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해서는 안되는 말들을 대담하게 풀어놓는 멍충이, 바보다. 오늘까지만..... 용서를 구한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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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91 사랑과 고독, 그리고... 6984 독백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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