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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완전히 달라져버린 세상( 퍼온글)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들이나 군 장성들이 브리핑 등에서 미국의 공중폭격으로 발생한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는가. 흔히 쓰는 `시빌리언 캐주얼티'(civilian casualty)라는 표현 대신 `콜래터럴 대미지'(collateral damage)라는 희한한 중성적 표현을 쓴다. 이 말을 우리말로 옮기면 `목표물 옆의 피해' 또는 `부수적 피해'라는 뜻이다. 걸프전쟁 때도 그랬고, 지금 아프간 보복공격에서도 이 말을 쓴다. 이 표현은 인간의 숨결과 감정이 표백돼버린, 냉혹하고 무자비한 것이다. 이런 표백된 언어의 사용은 지금의 전쟁성격까지 잘 보여준다. 콤퓨터 게임처럼 목표를 정확하게 가격하는 공격장면만 제한적으로 제공됨으로써 전쟁의 참혹성은 증발돼 버린다. 걸프전쟁 때보다 더 엄격한 정보의 제한이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일상적일 수 없는... 처참했던 9.11 동시테러와 그 뒤의 보복전쟁, 그리고 최근 백색테러의 공포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세상은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달포 전 일상적이었던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일상적일 수 없다. 비행기 타는 일, 우편물 받는 일, 고층 건물로 들어서는 일 등 어느 것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받아들였던 일상적 일들이 아니다. 특히 미국에서 그렇다. 단순한 흰색 밀가루조차 이제는 소름끼치는 죽음의 가루, 공포의 테러가루로 보일 수 있는 이 현실이 이전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무시무시한 변화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미국 의회가 잠정 폐쇄되는 일까지 생겼다. 동시테러 얼마뒤 나온 미국 시사주간지 은 달라져버린 세상 일들 가운데 일부를 이렇게 전했다. 홍콩 항공기를 탑승한 어느 인도인이 `베이스 기타리스트'라고 자기소개를 했는데 옆에 있던 미국인 탑승객이 `보스니아 테러리스트'로 잘못 알아듣고 급히 승무원에게 알려 결국 비행기에서 쫓겨났다.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한 지상요원은 이라크계 미국인의 탑승 자체를 거부했으며, 어느 조종사는 자기 비행기에 두 명의 파키스탄 사람이 탄 것을 보고 이륙을 아예 거부했다. 이런 일들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백인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아랍계 사람들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고, 미국의 대규모 군사공격을 받고 있는 아프간 일반 국민들의 뿌리뽑힌 삶도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 테러방식도 이전과 도무지 같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이처럼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변화를 오게했는가. 무엇이 아랍계 테러리스트들로 하여금 일반 탑승객이 가득한 여객기를 납치하여 뉴욕의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펜타곤을 향해 돌진하게 했는가. 그 답은 나의 목숨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초개처럼 버리게 하는 극도의 증오심과 분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극도의 증오와 분노의 뿌리를 많은 이들은 친 이스라엘 정책을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찾는다. 미국, `왜 이런 일이..' 물어야 미국의 시사주간지 최근호에 실린 독일인 하인즈 하트만의 글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누가 이 짓을 했는가'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하는 진정한 질문이 있어야 한다. 미국인들은 왜 미국이라는 위대한 나라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증오의 대상이 되는지 대답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미국이 지금 펼치고 있는 보복전쟁이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증오와 절망이 있는 한, 빈 라덴을 죽인들 그 뒤를 잇는 수많은 빈 라덴들이 나올 것이고, 탈레반 정권을 전복한다 해도 탈레반적 인물들은 사라지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미국은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미국을 향한 증오와 절망의 뿌리를 보는 겸허한 작업을 해야 한다. “미국 편이 되거나, 아니면 테러집단의 편에 서라”며 이분법적으로 줄서기를 강요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강압과 오만으로는 결코 근본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아프간 민간인들의 죽음을 `부수적 피해'로 계속 부르는 한, 그 표현에 담긴 냉혹함과 무신경, 우월감, 오만 등이 계속되는 한, 피와 보복의 악순환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금 그 보복의 악순환이라는 깊은 늪 한 가운데 빠져있다. 정연주/ 한겨레 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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