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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3 日目

깡패적 차별 일상적 차별 (퍼온글)

지금도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한국학을 공부했던 한 고려인(재러동포) 여성과의 대화가 자주 기억난다. 한국의 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석사과정을 마쳤던 그 여성은, 박사과정의 장학금이 계속 나올 것인데도 학위를 한국에서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아니, 한국학을 하려면 그 종주국이자 당신의 고국인 한국에서 계속하는 게 순리가 아니오?” “식당이니, 이발소니 어디를 가도 나의 외국식 발음을 듣고 맨 먼저 물어보는 것이 `어느 나라에서 온 동포냐?'는 것이죠. `고려인'이라고 대답하면, 그 다음 반응이 뭔지 아세요? `아이고, 거기에서는 어렵지. 사는 게 어려워서 왔구나'예요. 국어의 토씨 체계를 연구하러 왔다 하면 안 믿는 듯이 다들 실실 웃어 보이죠. 그들은 말로 우리를 `같은 민족'으로 부르지만, 각자의 의식을 들여다보면, 같은 인권을 가진 같은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러시아로 귀국하면 인종차별을 일삼는 모스크바 경찰들에게 가끔 모욕도 당할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들의 깡패적인 차별이, 여기의 일상적인 차별보다도 결코 무섭지 않아요!” 그 여성에게 필자가 세계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경제적 차별의 현상을 설명하여 가지 말고 있으라고 설득했지만, 끝내 그 여성의 결심을 바꿀 수 없었다. 필자가 대화를 나누어 본, 한국에 머물고 있는 대부분의 고려인과 조선족들을 화나게 만든 것은, 경제적 우열에 의한 단순한 차별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재러·재중 동포에게 적용하는 일종의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의 논리였다. 전형적인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 지역의 주민·문화에 대한 가치를 부정하고 이질시·타자화하는 것과, `타율성'과 `자기 구제 능력의 부재' 등의 무력과 무능을 강조하는 것을 뜻한다. 침략의 대상이 된 비서구 지역의 `원주민'들을 `경제·사회적 혼란에 빠져 남의 도움 없이 헤쳐나갈 수 없는 힘없고 불쌍한 존재'로, 그리고 `과거에 위대한 문명을 가졌지만, 이미 쇠퇴해서 우리의 교화와 가르침, 선교 없이는 문명화·근대화하지 못할 우리 도움의 필수적인 대상'으로 보려는 것은, 침략자의 당연한 본능이다. 그러면 한국을 깊이 접해 본 대부분의 고려인·조선족에게 엄청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은 무엇인가? 중국·러시아 동포의 상황을 직접 연구해 보지 못한 대부분의 일반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한국 보수 언론들이 보여주는 북방 지역 동포의 모습은,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못살고 불쌍한' 주변적 인간이다. 그들의 과거(항일 독립 투쟁 등)가 위대하지만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문명화·현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우리의 종교, 우리의 의료, 우리의 산업'의 현지 확장이라는 것은, 북방 동포와 관련된 모든 보도의 보이지 않는 심층적 의식이다. 그러나, 모국의 은혜의 수혜자인 `못사는 동포'들은, 모국의 너무나 선진화된 오리엔탈리즘을 과연 받아들일 것인가? 한국 보수 언론들이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이지만, 북방 동포들에게는 뿌리 깊은 문학·교육·학술적 전통도 있고, 조선족·고려인으로서의 꿋꿋한 자존심도 만만치 않다. 미국 선교사·군인·외교관들의 오만과 인종·문화적 차별주의는 식민지 조선과 남한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반미 의식을 심어주었듯이, 현재와 같은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은 많은 `수혜자'들에게 심한 반한 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북방 동포와의 관계가 완전한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근대적 정신 즉, 평등과 인권 의식이다. 한민족처럼 근·현대사에서 차별과 수난의 쓰라린 경험을 가진 민족이라면 오히려, 그 역사에서 누구에게도 비인간적 차별과 멸시를 보내면 안 된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어야만 한다. 박노자/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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