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2 日目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
“사랑하는 그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당신은 자신의 죽음과도 직면하게 됩니다/인생의 덧없음과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당신도 인식해야만 하는 순간들이/한꺼번에 밀려들 것입니다/당신이 평소에 간직하고 있던 신념과 확신보다도 더욱 강한 힘을 가진 죽음이/다른 모든 신념들을 전복시키면서/당신을 이끌어 갑니다” 랍비 얼 그롤먼의 잠언집 ‘당신은 가고 나는 남았다’에 있는 ‘슬픔을 통한 성숙’을 되풀이해 읽으며 근래에 세상을 떠난 여러 지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제까지도 환히 웃으며 이야기하던 사람이 지금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그를 떠나 보낸 이들이 일상에 묻혀 바삐 지내다가도 문득 쓰라린 상실감과 그리움으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전에는 크게 생각되던 어떤 일이 지금은 하찮게 여겨지는가 하면, 한껏 욕심을 가졌던 일에 대한 집착에서도 얼마쯤은 자유로워지고, 매우 친숙했던 세상이 왠지 낯설게 여겨지는 체험도 한다. 그리고 아직 지상에 남아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어떤 죽음 맞을지 묵상해보자▼ ‘제가 죽거든 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써주십시오’라고 메모해서 수도공동체가 관리하는 앨범에 사진을 끼워 둔 어느 수녀를 본받아 나도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가 그리했더니 담당 수녀는 ‘갑자기 왜 그래요?’하며 마음이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 각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지를 그 누구도 예측할 순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매일 한 번이라도 자신의 죽음을 앞당겨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과 이웃을 향해 구체적으로 고별 인사도 해보고 짧은 유서도 작성해 보자. 상상으로나마 관 속에 누워보고, 땅 속에 잠시 묻혀도 보자. 그리하면 스스로 숙연해지고 조금은 더 겸허한 모습이 되어 일상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떠난 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시간을 아껴 쓰고 마음을 맑게 가꾸라고. 늘 자기만 앞세우는 교만하고 이기적인 독선, 탐욕, 자기 도취의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 좀 더 많이 웃고 즐겁게 살라고, 자연과 인간과 사물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도 깊이 감사하는 연습을 하라고 말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려면 너무 힘드니 평소에 화해하고 용서하는 너그러움, 남을 배려하는 사랑을 더 많이 연습해 두라고 당부한다. 끊임없이 인내하고 양보하는 ‘작은 죽음’을 평소의 삶에서 미리 연습해 두지 않으면 죽음의 순간이 올 때 마무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모처럼 눈이 많이 온 날 우리가 만든 눈사람이 꽤 여러 날 녹지 않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녹아버린 걸 보고 내가 말했다. ‘우리도 죽을 때 저 눈사람처럼 남에게 부담 안주고 깨끗하게 녹아버리면 좋지 않을까요? 난 가끔 죽음이 두렵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후배 수녀가 말했다. ‘수녀님, 너무 걱정 마세요. 사경을 헤매던 제 경험에 의하면 그 세계는 의외로 아주 따스한 빛의 나라로 느껴져서 그 후론 누가 죽었다고 해도 전처럼 슬프지가 않답니다. 오히려 축하해 주고 싶을 정도죠. 내 인생관도 달라져서 이렇게 바보처럼 즐거이 웃기만 하잖아요. 살아 있는 오늘에 대한 충실성,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야말로 영원으로 이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새처럼 명랑한 그의 목소리는 나에게 위로가 됐다. ▼최선을 다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나도 올 한해는 더 많이 놀라워 하고, 더 많이 고마워 하고, 더 많이 남을 챙겨주는 사랑을 해야지. 말도 행동도 기도도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성실을 다해서 살아야지’라고 다짐하는데 눈에 띄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함박눈 내리던 날, 하얀 길로 떠나간 ‘하얀 길’의 동화작가 정채봉님이 하얀 꽃 속에 둘러싸여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초췌하지만 밝은 얼굴로 서명까지 해서 건네준 그의 책에서 ‘오늘’이란 시 한 편을 골라 읽으며 기도의 촛불을 켠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새 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이해인(시인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회) - 동아 일보 칼럼에서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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