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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6 일째

고모님을 영영이별하는날(10월 23일 의 일기)

휴일인데도 차표를 구할수 있었단건 행운이었다.어젠 그 직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위해서 약간의 용돈( 용돈이라기 보담은 고마움의 댓가로썬 적은 용돈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기차표가 도합해서 31000원이니 더이상은 어렵고....)을 보내서 구하게 하였다.22일 아침 7시 14분발 영등포 나주까지 ....오는건 25일 14시25분 나주발 영등포 착...바로 하루전에 가는 표를 구한단 것이 설마 했었고 입석으로 갈각오였었지...헌데 그 직원의 수완인지 아님은 우연인지 차표가 있단다.얼마나 고맙던지....그래서 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건가 보다.그리고 복지차원에서 고모가 돌아가셔도 3일간의 특별 휴가가 주어진단 것도 새롭게 안 사실이고....어제 역에 도착해서 곧바로 우리집으로 오고 말았다고모가 계신 상가가 보이는 길이지만 저녁을 보낼 각오이고.......날밤을 새운단 것이 쉬운일이 아니어서 일단 집으로 갔다가 저녁에 들를 생각이었다.얼마나 지났을가....오후 4시경이었나 보다 집에 온지 3시간 정도 지나서 슬슬준비하고 갈려는 참이었고 옷을 입고 택시를 부르려고 한때였다.남산 형님의 전화다 ..아마도 서울에서 내려 올 시간이 되어서 전화 한것이란다.아무도 오지 않아서 형님의 입장에서 보기에 안되어 보였던가 보다.전화 받자 마자 나주로 달렸다..형님과 나와 동생 희순이...셋이서...상가는 교통이 복잡한 대로 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항상 복잡했다.인사하고 얼마나 있다가 홍래 형님의 술 주정을 더이상 두고 보기가 안되어 그핑겔대고 형님과 희순이와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그때가 아마도 저녁 8시는 될때였을 것이다...어둑 어둑했으니까....술을 먹고선 무엇을 그리도 주절 주절하는지 원 ....같이갈려니 겁난다 남하고 시비라도 붙을가봐서다.그저 누구하고도 막무가내로 쌈을 하는 그 성질이 아직도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않았다...특유의 그 욕설과 아무하고나 언쟁하는 그 행동...그리고 아침 8시 30분에 나주 가는 버스가 있단 홍래 형님의 말대로 버스 타고 갈가 하다가 택시 타고 가자고 전화 하니 그냥 오란 애기...벌써 몇몇이 버스 타러 나와 있었다...어제밤에 비가 와서 오늘 산에 간단 것이 또 옷을 적실것 같고 해서 속에다 내복입고 우산들고....입지도 않던 내의를 입었으니 얼마나 답답한지 ?전에 할아버지의 碑를 세울때도 비가 와서 비맞고 얼마나 떨고 그랫던가...그래서 희순의 내복을 입고 낵타이도 안갖고 와서 형님이 시골에 살때 매던 그 넥타이를 매었다...한 30년전의 낵타이인가 보다...다행인것은 상가에 가는 것이라서 낵타이가 화려하지 않아도 어울려서 다행이다.와이프가 와이샤스를 넣고 티 사스입고 가라고 하면서 낵타이를 넣지도 않고...왜 그렇게도 엉망인 여자인지...왜 그렇게도 생각이 안나는 짓을 하는지....?그런 엉성한 모습의 나는 완전히 촌 사람의 타입 그대로다.아니 농군이 한 30년전의 지나간 낵타이를 매고 어디 외출한 몰골일거다 아마도...그런 엉성한 모션으로 나가려니 희순이 어디가서 하나사자고 한다.너무도 안 어울린 타입이나 보다.고모가 마지막 탄 장의차는 하얀 국화로 덮어서 당신의 평생동안의 그 향기나던 청순한 삶과 같은 모습으로 단장하고 ....그래 국화가 바로 고모의 모습과 닮았어...잔잔하면서도 우아한 그 모습이 ....10시 30분에 장지인 당신이 살았던 계리 마을 선영..거기에는 먼저가신 고모부가 묻어 있다.장지에 도착은 11시경....벌써 다 파놓고 하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당신이 살았던 그 동네서 동네사람들에게 술 한잔 주려고 잠시 쉬고....당신이 살았던 그 동네를 한바뀌 돌고 그 뒷산에 있는 당신의 안식처로 갔다...하얀옷으로 입은 교회의 신도들이 고모님을 차에서 장지까지 운구하고 ....그윽한 찬송가 소리와 같이서.....세월이 흐르면 습관도 달라지는 가....?장사의 모습도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묻는다.간단하게 찬송가와 목사의 기도소리와 편히 쉬게 하려는 은은한 찬송가...그리고 당신은 이젠 영영히 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다신 이 지상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곳으로 묻히셨다...전엔 관채 매장하고 몇년이 지난후에 다시 이장하고 그랬다...헌네 이젠 편리함을 찾은 이유에선지 ......?관을 뻬고 시신만을 매장한다....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니 이런 기이한 풍습이 이행되고 있는것이 아닌지?이젠 영원히 다시 확인할 필요도 이장도 필요없는 곳으로 당신은 인연을 끊게 된다자식들과 영원히......몇년후에 이장을 한단 것은 시신을 확인하고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함으로 다시 한번 세상밖으로 나오게 한 절차가 아마도 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한것이 아닐가...그 장지가 물이 나오고 명당이 아닌 나뿐곳이라고 해도 알수 없다...이장이란 절차가 생략되어 버리고 말았으니....하긴 죽은 후의 육신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긴 해도.....그래도 맨땅위에 시신을 묻는단 것이 어쩐지 잔인하게 (?)느껴진 것은 어딘가 잘못생각한것이 아닌가 몰라.....그렇게 허무하게 고모는 자기의 자취를 그대로 감추어 버리고 그리고 그 후손들은 그 묘지 주변서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참 간단하고 편리한 세상이다....영정의 사진은 칠순잔치 에서 찍은 것인가.....청순한 소녀 같은 귀엽게 보이는 얼굴이 날보고 웃고 있는 것 같다...' 고모님 ...이젠 그 시끌벅절한 곳에서 이리도 조용한 곳으로 오셨으니 당신이 원하던 그런곳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요? 이젠 평안히 쉬십시요..그리고 여태 적조한 애기도 오늘부터는 고모부와 도란도란 애기 함서 적조함을 달래십시요...당신이 나에게 남겨준 그 은은한 미소와 정성스레 생각하여 주신것들....조용하게 말씀하시던 그 자태 영원히 기억에 새기렵니다....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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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91 사랑과 고독, 그리고... 6989 독백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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